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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C는 성경 66권 다음의 67권째 메시지입니다.

철학과 신학 (Philosophy and Theology)

저자/역자 존 D. 카푸토 지음 / 김완종, 박규철 옮김
정가 12,000원
판매가 10,800
발행일 2016년 10월 15일
정보 46판 양장 / 240면
ISBN 978-89-341-1573-1 (9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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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에서 신학과 철학의 통합을 모색한다. 먼저 데카르트, 칸트, 니체,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을 포스트모던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비판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의 전환이 어떻게 가능해졌는지 철학적 흐름을 따라 지적하고 있다. 또한 대표적 신학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와 해체철학의 거두 자크 데리다를 비교하며, 신학과 철학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논증한다. 결국, 저자는 두 사상가의 비교를 통해 조직적 체계를 지향하는 신학이 감성 중심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어떤 일치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고, 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통합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저/역자

작가소개

존 D. 카푸토 (John D. Caputo)

브린모어대학에서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빌라노바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를 지냈다. 시러큐스대학교의 종교와 인문학 토마스 J. 왓슨(Thomas J. Watson) 석좌 교수이며 빌라노바대학교의 데이비드 R. 쿡(David R. Cook) 명예 교수이다. 그는 많은 글과 책을 저술했는데, 『How to Read 키르케고어』, 『사르트르』, 『종교에 대하여』, 『마르틴 하이데거와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있다.


역자소개

김 완 종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총신대학교와 장안대학교에서 강의했고 현재 연세대학교, 영동대학교 외래 교수이다. 역서로 앨빈 플란팅가의 『신·자유·악』(공역) 등이 있다.

박 규 철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으로 학사와 석사 그리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국민대학교 부교수이다. 저서로 『플라톤의 국가 읽기』, 『그리스 로마 철학 이야기』, 역서로 『신플라톤주의』 등이 있다.

목차

추천사_ 이승종 박사: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 5
_ 이경직 박사: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 5
『포스트 모던 시대의 철학과 신학』을 위한 칭송
_ 토니 존슨(『거룩한 길』[The Sacred Way]의 저자) 외 8인 / 6
한국어판 서문: 인생의 열정 / 12

서론 / 23
1장 신학 “그리고” 철학 / 25
2장 전근대에서의 철학과 신학과의 관계 / 37
3장 근대 시대의 철학과 신학: 철학과 신학의 분리 / 56
4장 계몽주의 비판하기 / 82
5장 포스트모던: 해석학적 전회, 언어적 전회, 혁명적 전회 , 포스트모던적 전회 / 98
6장 철학과 신학의 관계를 “그리고”에서 “ ~ 로서 보는 것”으로의 전환 / 111
7장 아우구스티누스와 데리다 / 125
8장 철학과 신학과의 관계: 인생의 열정 / 146

역자 후기 및 해제 / 159
부록 / 230

추천사

이승종 박사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하이데거 연구에서 시작해 대륙철학과 신학으로 연구의 영역을 넓힌 존 카푸토(John D. Caputo) 박사가 철학과 신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논하고 있는 역작이다. 신학과 철학을 전공한 하이데거 연구자 김완종 박사와 서구 지성사를 오랫동안 연찬(硏鑽)해온 박규철 박사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철학과 신학』(Philosophy and Theology)의 최적의 역자임에 틀림없다.


이경직 박사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미국 연구년 때 서점에서 처음 만나서 한국어 번역이 되었으면 했던 책이다. 신학과의 관계 속에서 철학 작업을 해온 서양철학사의 대가들을 포스트모던주의자의 눈으로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신앙과 신학의 자리를 부인하기보다는 신적 담론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책이다. 한국의 기독교철학과 신학의 논의를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책으로 일독을 권한다.


이디쓰 와이스코그로드(Edith Wyschogrod) 박사
라이스대학교 뉴턴 레이저 명예 교수

외관상 독립적 영역인 철학과 신학과의 친밀성을 밝혀줌으로써 카푸토는 “종교인들이 입구에서 자신의 합리적 능력을 점검해왔다”는 여전히 폭넓게 주장된 믿음을 불식시킨다. 그는 유머와 열정으로 철학과 신학에 대한 “전근대”의 표현들로부터 사유의 새로운 규칙들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 과학의 역할로 인해 도입된 급진적 변화에 이르기까지 철학과 신학과의 관계성의 역사를 추적한다.

본문중에

후기 근대성(19세기와 20세기 초기)에서, 근대 과학의 모든 세력들이 종교에 대항해 연합했고 종교의 종말을 예측했다. 이러한 세력들에 포함된 것은 (당시에는) 새로웠던 “심리분석” 과학, 경제학, 성경에 대한 역사적 탐구였다. 강력하고 세속적인 민주정치 체계의 등장도 그러한 세력들에 포함된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티에서는, 그러한 후기 근대성에서 혹독한 공격을 받았던 종교가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켜게 되었다. 포스트모던 이론의 주요한 영향력 덕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주장, 곧 모든 것을 설명하고 또한 모든 것을 자신 안으로 환원시키는 비역사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거대담론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의심하게 되었다. - p. 16-17


소크라테스에 대해 철학자들이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으로 신학자들이 그를 칭찬하는 것 중의 하나는 그가 자신의 무지와 한계에 대해 얼마나 심도 있게 확신했는지 그리고 자만심의 죄에 대항하여 어떻게 건전한 경고를 했는가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후 많은 세기가 지나 쇠렌 키에르케고어는 자기 삶의 작업을 “기독교의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그는 19세기 덴마크에서 자신의 상황이 매우 소크라테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참된 덕을 추구했던 방식처럼 참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색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주변 세계가 기독교적이라고 인정받지만,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실제로 신약성경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면, 냉혹한 진실은 기독교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p, 35.


그러나 포스트모던적 전회의 부정할 수 없는 결과는 종교적, 신학적인 담론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예술적, 윤리적 언어처럼 종교적 담론 역시 비트겐슈타인이 명명한 것처럼 그 담론의 환원할 수 없는 “삶의 형식”을 구성한다. 환원할 수 없는 삶의 형식을 구성한다는 것은 어떤 환원할 수 없는 일들이 종교적 담론이라는 삶의 형식에서 수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종교적 “언어게임”으로 전환됨으로써만 수행되는 어떤 일들을 의미하는데, 그 종교적 언어게임은 하나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기도처럼 그 자체의 모든 담론적(discursive) 형식들을 포함한다.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더 이상 비경험적 가설(자연주의, 실증주의)을 나타낸다는 이유 때문에 제거될 수 없으며 더 이상 윤리학(칸트)으로 환원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의미는 결국 이러한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형식 속에서 그 이름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는 종교적 공동체의 구체적인 삶 속에 새겨져 있다. –p.114


그래서 데리다에게도 최소한의 종교적인 것, 기도하는 것, 신앙적인 것, 소망하는 것이 있으며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는 것처럼 똑같이 있다. 실제로 필자가 철학과 신학의 또 다른 영역 다툼의 시작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면, 필자는 비록 지나치게 경솔한 것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정한 기도가 일종의 “상처 입은 낱말”이라고 한다면 데리다의 『할례고백』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보다 더욱 많은 기도를 열심히 드리고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 낱말들이 더욱 상처 입고 주위를 잘라내는 것(circumcisional, 할례)이고 할례고백적(circumfessional)이어서 더욱 상처 난 언어이며, 결국 훨씬 더 고백적이고 더욱 할례고백적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데리다가 공동체와 아우구스티누스의 확신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또한 필자가 특정한 신앙 혹은 규정된 신앙을 고백하고 공언한다라는 “고백적 기도”(confiteor)의 의미에서 “고백”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p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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