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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C는 성경 66권 다음의 67권째 메시지입니다.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망상 (The Delusion of King James Version Onlyism)

저자/역자 권동우 지음
정가 18,000원
판매가 16,200
발행일 2016년 2월 29일
정보 신국판 / 416면
ISBN 978-89-341-1518-2 (9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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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본서는 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유일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저자는 킹제임스성경의 탄생에 관한 역사적, 신학적 고찰을 통해서 어떻게 킹제임스성경이 번역자들에 의해 탄생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준다. 더불어, 유일주의가 주장하는 사항들을 킹제임스성경 서문, 난외주의 분석 그리고 실례를 들어서 그 허구성을 논증한다. 본서는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가 가지는 문제점을 본문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사본학적 분석을 통해 실랄하게 파헤치고 있다.

저/역자

작가소개

권동우 지음

저자는 한국에서 20년 만에 알게 된 1611년 판 킹제임스성경 내에 존재하는 번역자들이 독자들에게 써놓은 서문을 접한 후, 너무나도 중요한 그 서문이 오랫동안 한국 성도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킹제임스성경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자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밝히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저자는 한국에서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에 빠지게 되는 성도 대부분은 순수하고 조금이라도 완전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지만 유일론자들은 검증되지 않은 역사와 거짓된 논리로 많은 성도를 미혹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은 킹제임스성경이 만들어진 역사적, 정치적 배경과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분석과 사본학적 접근으로 성경관의 혼란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역자소개

목차

추 천 사 조영엽 박사/총회신학(성경보수) 교의신학 교수 / 4
저자 서문 / 6

제1장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문제점들 / 11
1. 우리는 진실 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 13
2. 이단적 성경관 - 성경의 원본이 영어로 존재한다 / 21
3. 배타적 교회관 - 우리는 침례 요한의 후예들이다 / 33

제2장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역사 / 39
1. 안식교교리 보존을 위해 시작된 유일주의 / 40
2. 근본주의 내에서의 유일주의 / 53

제3장 제임스 왕의 통치와 잉글랜드 국교회 / 61
1. 영국의 정치 상황과 제임스 왕의 통치 / 62
2. 1604년의 교회법 / 73
3. 찰스 1세의 시대(재위 1625 - 1649) / 79
4. 특별 고등법원 / 81

제4장 킹제임스성경에 영향을 준 성경들 / 85
1. 가톨릭의 권위 아래 놓였던 성경 / 86
2. 킹제임스성경 관련 성경들 / 89

제5장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의 이력 / 103
1. 각색된 54명의 영감 받은 번역자들 / 104
2. 번역자들의 신학적 입장 / 108
3. 번역자들의 이력 / 110

제6장 킹제임스성경의 번역 / 135
1. 번역의 필요성 / 136
2. 번역의 15가지 원칙 / 143
3. 1602년 판 비숍성경으로 수정된 증거들 / 151

제7장 초판에 드러나는 번역자들의 신학사상 / 167
1. 마리아 숭배 사상 / 169
2. 가톨릭의 전례력과 축일들 / 177
3. 외경은 참고자료가 아니다 / 183
4. 정경과 외경이 상호 참조되어 있다 / 193

제8장 서문과 난외주의 중요성 / 197
1. 서문의 중요성 / 198
2. 난외주의 중요성 / 206
3. 다른 사본에는, 다른 고대 사본에는 / 225

제9장 같은 신앙 다른 평가 / 231
1. 가톨릭 신학의 아버지 - 어거스틴 / 233
2. TR의 창시자 - 에라스무스 / 237
3. 교황에게 헌정된 에라스무스의 성경 / 241
4. 에라스무스가 필요 없는 세상 / 253
5. 마귀적인 변개자 -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 257

제10장 TR의 근본적인 의문들 / 261
1.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의 기원 / 262
2. 다수 본문(MT)과 공인본문(TR)은 다르다 / 269
3. MT와 TR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 276

제11장 없음이 없는 성경과 바른 성경관 / 341
1. 불가타전수성경 / 342
2. 없음이 없는 성경의 위대함 / 344
3. 균형 잡힌 성경관과 신앙 / 346

부록 1 킹제임스성경의 그리스어 원문 비교 / 354
부록 2 킹제임스성경의 서문: 번역자들이 독자들에게 / 375

추천사

조영엽 박사(총회신학 교의신학교수)

KJV만이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 책의 제목대로 유일주의의 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 11장, 부록1, 2로 되어 있는 이 책은 KJV 유일주의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기념비적 저서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저자의 지대한 관심과 예리한 투시력과 탁월한 실력으로 그 내용과 깊이에 있어서 광맥에서 보화를 찾게 했다고 확신합니다. 이 책은 KJV를 연구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연구를 위한 귀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 책을 교수님들, 목회자님들, 신학생들, 평신도들 모두에게 필독서로 추천합니다.

본문중에

이렇게 완벽하지 않은 성경들에 대해서 KJV 번역자들은 사도들조차 어떤 성경이 완벽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 역본을 정죄하거나 폐기처분을 내리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70인역본이 많은 곳에서 원어 성경과 차이가 나며, 명쾌함이나 진지함이나 장중함에 있어서 원어 성경의 근처에도 못가지만, 그렇다고 사도들 중 누가 그 역본을 정죄했는가? 폐기처분을 내렸는가? 아니다. 그들은 그것을 사용했다(The translators to the Readers). -102쪽

그 외 모든 유일론자의 책에서는 킹제임스 번역의 15가지 원칙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은 왜 KJV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들을 자세히 소개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KJV에 대한 믿음이 손상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원칙이 있기 때문으로 생각되는데 15가지 원칙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번역의 15가지 원칙은 KJV 번역 시에 번역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 모든 번역그룹은 충실하게 이를 따라서 번역작업을 했다. -144쪽

1602년 판 비숍성경을 저본으로 하여 본문을 개정했다는 측면에서 킹제임스성경은 마지막 비숍성경이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뿐만 아니라 킹제임스성경은 1602년 비숍성경에 존재했던 외경이나 전례력 등 기존에 존재했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 안에는 청교도적 정신과 거리가 있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청교도들은 KJV가 번역된 이후에도 제네바성경을 더 선호하였다. 그리고 제임스 왕이 1616년 영국에서 제네바성경의 출판을 금지한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킹제임스성경을 봐야 했지만, 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성경을 출판할 때부터는 개혁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외경을 포함하여 전례력의 축일과 자신들에 대한 비난이 있는 많은 분량의 서문을 제외하고 출판하였다. -168쪽

그러나 유일주의자들은 학자들이 연구한 모든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KJV가 원어로 하나님에 의해서 확정된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본문비평이나 사본학의 발전이라는 것을 모두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어떠한 학문적인 결과조차도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한다. 이들은 KJV를 옹호하지 않는 모든 학자들을 싸잡아서 자유주의자라고 비난한다. 그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하는 교황에게 헌정한 에라스무스는 제정신이 아닌 이교도며, 54명의 번역자들 대부분도 가톨릭에 오염된 자들이며, 킹제임스성경의 완전성을 거부했던 존 버건이나 스크리브너를 포함한 사본학과 관련된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KJV를 변개하려고 하는 자유주의자나 로마 가톨릭주의자들이 되는 것이다. -275쪽

한 곳에서 Journeying(여정)이라고 했으면 다시는 Traveling(여행)이라고 하지 않고, 한 곳에서 Think(생각하다)라고 했으면 다시는 Suppose(가정하다)라고 하지 않고, 한 곳에서 Pain(고통)이라고 했으면 다시는 Ache(아픔)라고 하지 않았고, 한 곳에서 Joy(기쁨)라고 했으면 다시는 Gladness(즐거움)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단어 대 단어로 직역하는] 문제를 완곡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그런 식으로 번역하는 것을] 지혜보다는 기괴한 느낌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경건한 독자에게 유익을 주기보다는 무신론자 속에 냉소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단어나 철자에 달려있단 말인가?
만일 우리가 자유로울 수도 있다면 왜 굳이 그런 것에 얽매여야 하는가?
같은 정도의 적절한 다른 말을 폭넓게 사용할 수 있을 때에도 굳이 정확한 한 단어만 사용해야 하는가? -409쪽(부록: The Translators to the Rea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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