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에 실린 예수님의 네 가지 강화에 사용된 당시 그리스-로마의 수사학과 그 역할을 분석함으로 예수님의 말씀 의도와 그 의미를 더 정확하고 깊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먼저 마가복음에 대한 여러 비평을 역사적,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신약성경/마가복음과 수사학의 관계, 수사학적 방법론 등에 관해 전반적으로 개괄한 후, 선정된 네 본문에 대한 상세한 수사학적 분석을 보여 준다. 마가복음 3:20-35(“사탄은 사탄을 쫓아낼 수 없다”); 4:1-34(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6:53-7:23(무엇이 사람을 더럽히는가?); 11:27-13:37(다가오시는 인자의 경이)의 예수님 강화 본문을 수사학적 양식에 따라 새롭게 번역해 보여 주고, 각 본문의 수사학적 단위, 상황, 분석, 개괄을 다룬다. 예수님도 마가복음 기자도 수사학을 사용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점과 복음 메시지를 어떻게 이해시키고 설득했는지를 밝히고, 오늘날의 독자들도 마가복음을 더욱 정밀하게 읽고 주님과 복음을 정확하고 깊게 알며 확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추천사 1 류 호 성 박사 | 서울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시인 예수』의 저자 1
추천사 2 김 정 훈 박사 | 부산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3
약어표 10
저자 서문 1 14
저자 서문 2 16
역자 서문 17
서론 19
제1장 양식비평 이래 예수님의 강화들 26
제2장 수사법으로서 예수님의 강화 77
제3장 사탄은 사탄을 쫓아낼 수 없다(막 3:20-35) 116
제4장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막 4:1-34) 182
제5장 무엇이 사람을 더럽히는가?(막 6:53-7:23) 270
제6장 다가오시는 인자의 경이(막 11:27-13:37) 309
결론 416
선별된 수사학 용어 사전 428
참고 문헌 439

마가복음의 주요 본문에 나타난 섬세한 수사학적 장치들을 조명함으로써 복음서 저자가 당시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글을 썼는지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수사학이라는 방법이 생소한 독자라면 부록에 실린 “그리스-로마 수사학의 간략한 역사”와 “선별된 수사학 용어 사전”을 먼저 읽어 보는 것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류 호 성 박사 | 서울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시인 예수』의 저자
저자들은 오랫동안 마가복음의 예수님 담화를 어색하고 파편적인 편집물로 보아 온 역사비평의 흐름을 검토한 뒤, 오히려 그것들이 하나의 통일된 수사학적 구성을 지닌 담화로 들렸을 것이라고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그 점에서 본서는 마가복음을 “무엇을 말했는가”의 차원만이 아니라 “어떻게 말했는가”의 차원에서 읽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다.
김 정 훈 박사 | 부산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그리스-로마 세계 안에서 엘리트가 아닌 대중에 의해 작성된 문헌들 중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장르는 독서 관습에 의해 결정되며, 독서 관습은 문학 작가와 독자가 속한 사회적 세계에 의해 형성된다. 그리스-로마 문학을 보존한 이들은 대부분 귀족 계층이었고 그들의 관심은 주로 자신들의 엘리트 문학에 집중되었기에, 오늘날 복음서를 비교할 수 있는 사회 다수 계층의 문헌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마가복음은 엘리트 문학처럼 읽혀지지 않는 대중문학에 속할지라도, 대중문학은 또한 그리스-로마 세상 대부분의 문맹적 대중 가운데 그 내러티브가 지향하는 바를 성취할 역량이 되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마가복음의 문학적 특성은 점진적으로 문학 비평가들 안에서 인식되고 있다..-p.41
비록 당시 기준들에 의해서는 매우 간결한 것일지라도, 마가복음 속 예수님의 강화들은 1세기의 수사학적 테크닉과 일치하도록 작성되었다. 그 복음서 자체의 실제 내러티브의 성취에 따른 관점보다는 그들이 선택한 읽기 방법론에 더 기인한, 역사비평 학자들의 파편처럼 나뉘어진 결론들과는 반대로, 본서는 마가복음에 있는 네 개의 주요한 강화가 양식과 주장에 있어 일관성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각각의 강화가 마가복음의 내러티브 문맥과 잘 병합된다는 점을 증명할 것이다.
효율적인 수사학을 들을 수 있고 판단할 수 있었던 1세기의 대중적 청중은 그 복음서가 설득력 있고 예수님의 강화 제시에 있어 통일성이 있다고 파악했을 것이다.-p.76
명백히 내레이터는, 예수님이 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에서 일련의 승리를 얻게 하고, 그들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고, 그다음은 그들이 예수님에 의해 정죄받게 함으로써, 그 복음서의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의 힘에 대한 깊은 인상을 주려 한다. 그러나 일차적 수사학에 대한 결과는 명백히 동일한 강화에 속한 수사학적 자료, 즉 12:1-12에 있는 소작농 비유 그리고 우리가 나중에 논할 마가복음 13:1-37에 있는 종말론적 강화로부터의 분리이다. 다시 말하면, 이차적 수사학의 목표들에 대한 일차적 수사학의 종속이 자명하다.-p.114
진정한 요점은 좋은 땅에 씨앗이 뿌려질 때, 좋은 땅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다. 스스로 열매를 맺는 땅의 비유 안에서 씨 뿌리는 자의 역할은 따라서 의도적으로 축소된다(씨 뿌리는 사람은 잠을 자고, 일상적인 일을 하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는 대비를 통해 좋은 땅이 말씀을 받을 때 발휘하는 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좋은 땅이 마가복음에서 치유받은 자들을 상징한다고 이해하는 톨버트의 생각이 옳다면, 이 해석은 확증된다.115 왜냐하면, 마가복음에서 치유받은 자들은 예수님의 추가 작업 없이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예수님의 부재중에도 성장한다.-p.260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리새인들, 군중, 심지어 제자들조차 모를지라도, (내러티브 속) 예수님과 (내러티브 밖) 독자들은 예수님의 정의에 따라 제자들이 더렵혀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손이 어떻든 간에, 그들은 이미 마음을 굳게 했기 때문이다(6:52). 따라서 비록 그들이 반복적으로 ‘내부인’에 포함될지라도, 예수님은 그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실 때, 그들은 스스로 내러티브 전체를 통해 돌밭임을 증명한다. 궁극적으로, 제자들의 마음의 강퍅함은 그들을 십자가의 고난 기간 동안 배신으로 이끌 것이다.-p.304
그러나 마가복음에서 신성모독적 행동들은 이미 성전과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시작되었고, 이 행동들은 헬라인이나 로마 군인들에 의해 자극받은 것이 아니라, 포도원을 찬탈하는 소작농들, 즉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행해진 것들이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사역 전반에 걸쳐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즉, 저주받은 무화과나무, 소작농 비유, 서기관들에 대한 예수님의 저주 등 모든 것이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에 의해 신성모독자로 간주 되었음을 보여 준다.-p.393
예수님을 “집주인”이라 부르는 것은 예수님의 분열된 집의 이슈를 다룬 마가복음의 첫 주요 강화를 연상시킨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가족들은 그분이 미치셨다고 생각하며, 그를 붙잡으러 나왔는데, 이는 앞서 논의한 바와 같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만을 포함하도록 그분의 가족을 재정의하신다. 이 강화에서 예수님은 이제 곧 온전한 권위로 돌아오실 집주인으로서 자신을 제시하신다. 따라서 이 강화 안에서 “깨어 있는 것”은 첫 번째 강화 안의 가르침인,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동등하다.-p.411
특히, 첫 번째와 세 번째 강화, 그리고 마지막 강화 단위에 포함된 논쟁들에서 예수님의 수사학적 힘은 그분의 적들을 압도한다. 마가에게 수사학은 권력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의 수량을 증가시키시거나 물 위를 걸으시거나 귀신을 쫓아내실 때조차도 가장 강력하지 않으시다. 예수님은 적들을 논리적으로 제압하실 때 가장 강력하시며,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기적의 능력을 직접 사용해 그분의 대적들을 물리치신 적이 전혀 없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오히려 그들과 직접 대결하셔야 할 때마다 예수님은 자신의 수사학적 역량을 의지하여 자신이 주인임을 증명하신다.-p.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