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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C는 성경 66권 다음의 67권째 메시지입니다.

복음서 읽기

저자/역자 조나단 T. 페닝톤 /류호영
정가 28,000원
판매가 25,200
발행일 2015년 5월 15일
정보 신국판 양장 / 568면
IS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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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복음서의 내러티브와 신학적 개론

복음서 읽기는 서신서들에 집중되어 있는 현재의 성경신학적 경향을 4복음서 위주의 해석학적 틀로 가져오고 있다. 또한 저자는 톰 라이트와 같이 역사적인 관점으로만 복음서의 의미를 제한하려는 것에 반대한다. 복음서들은 역사로서의 속성을 간직한 역사적 저작이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복음서 기자들의 신학적 해석이 아우러져 있는 신학적 저작이다. 본서는 복음서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의도를 조금 더 잘 알 수 있도록 인도하는 디딤돌 같은 책이다.
저자는 참된 해석이란 인식에 연결되어 있으며 참된 인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논한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참된 인식이란 단순히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저/역자

작가소개

조나단 T. 페닝톤(Jonathan T. Pennington)

-미국 Northern Illinois University(B.A.)
-미국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M.Div.)
-영국 University of St. Andrews(Ph.D.)
-미국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신약학 교수

저서
-Readings in the Greek New Testament (Zondervan, 2004)
-Heaven and Earth in the Gospel of Matthew (Baker Academic, 2009)


역자소개

류 호 영

-미국 Calvin Theological Seminary(M.Div., Th.M.)
-영국 University of Glasgow(Ph.D.)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저서
-『헬라어 교본』(CLC, 1997)

역서
-『예수와 이스라엘』(CLC, 1999) ˙ 『구약신학』(CLC, 2003) ˙ 『마가복음 신학』(CLC, 2011) 외 다수

목차

제1부 단단한 기초 놓기
1장 복음서란 무엇인가?: “복음”을 정의하기 / 29
2장 복음서란 무엇인가?: “복음서” 장르에 대한 이해 / 59
3장 우리는 왜 복음서가 필요한가?: 왜 바울서신으로만 충분하지 않은가? / 99
4장 4복음서를 가지게 된 기쁨과 고뇌 / 133
5장 텍스트들과 역사: 4중적 증거로서의 복음서의 증언 / 187
6장 성경 바르게 읽기: 세 가지 길 / 259
7장 성경 바르게 읽기: 의도, 의미, 자세 / 287
8장 바른 복음서 읽기의 토대들 / 331

제2부 바른 본문 읽기를 통해 건물 세우기
9장 복음서를 이야기로 읽기: “어떤 식으로든 내 마음에 와 닿으면 된다”
(What ever strikes me, WSM)는 해석학 대 내러티브 분석 / 383
10장 복음서를 이야기로 읽기: 문맥적 의미의 원주들(circles) / 411

제3부 복음서라는 건물에서 살기
11장 정리와 요약: 복음서를 적용하고 가르치기 / 471
12장 복음서는 정경의 아치형 입구이다 / 507

추천사

김경진 박사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복음서들에 대한 저작과 연구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또 다시 새로운 저서를 집필한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를 저자가 확신했기 때 문일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조나단 T. 페닝톤(Jonathan T. Pennington)의 새로운 저서는 기존의 시각과는 달리, 복음서들을 새롭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새로운 안목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복음서가 바울서신보다 뒤늦게 기록되었지만, 정경 에서 서신서 앞에 위치한 까닭은 서신서의 예수 그리스도 해석의 사실적(史實的)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역사로 서의 속성을 간직한 역사적 저작이면서, 동시에 복음서 기자들의 신학적 해석이 아우러져 있는 신학적 저작이다. 따라서 이 두 가 지 요소가 제대로 참작될 때 비로소 우리는 복음서를 바르게 이해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역사와 해석이라는 두 개의 축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리차드 보캄(Richard Bauckham) 박사
University of St. Andrews 신약학 교수

복음서들에 대해서 너무도 많은 글과 저작이 쓰였기에 이 모든 저작들의 일부 이상을 읽어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 나 복음서들에 대한 학자들의 저작을 읽기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라 도 곧바로 복음서들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다양하고도 많은 유형의 중요한 질문들이 존재하고, 이 질문들 중 대부분은 다양하고도 많은 대답을 받은 바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정말로 복음서들에 관해 글 을 쓴다는 것은 벅차고도 혼란스러운 일이다.
조나단 T. 페닝톤(Jonathan T. Pennington)은 이 모든 질문들과 친숙하고 폭넓게 책을 읽어 왔으며 이 질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왔다. 페닝톤의 관심은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서 복음서들을 읽되, 원래 복음서 본문들의 성격에 신실 한 방식으로 복음서들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이러한 관심을 자신(그리고 독자들)의 지표로 삼아서 페닝톤은 수많은 학문적인 논의들로부터 이러한 책무에 가장 중요한 것을 정제해 내고 있다. 페 닝톤은 놀랄 만한 정도의 명료함과 일관성을 가지고 이 일을 해 내 고 있다. 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환원주의자가 되지 않으면서 도 이러한 명료성과 일관성을 이루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페닝톤은 미니멀리스트(minimalist)의 “역사적 예수 찾기”(search for the historical Jesus) 가운데 복음서 본문들의 대부분을 옆으로 치워 두는 일을 하 고 있지 않다. 또한 그는 정경 혹은 신학만을 선호해서 “역사”를 소홀히 취급하지도 않는다. 페닝톤은 우리에게 4개의 복음서들을 “역 사”와 “신학”으로 읽기를 요청한다. 복음서 각각을 그 자체적 관점에 서 하나의 내러티브 전체로, 장엄한 성경의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의 절정으로, 그리고 성경이라는 정경 전체의 아치형 입구의 쐐기돌 혹은 이맛돌로 읽기를 요청한다. 페닝톤의 접근 방식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아마도 그리스도인의 덕과 제자도에 대한 그의 관 심이다. 복음서들이 어떤 유형의 문헌인가는 복음서들이 역사적이 며 신학적인 저작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충분히 정의되지 않는다. 복음서들은 복음서를 읽는 독자들의 삶에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 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문헌이다. 한 마디로 복음서들은 덕목-형성적 (virtue-forming)인 성격을 지닌다. 복음서들은 독자들에게 근본적인 변화의 방식으로 예수를 따르도록 초청하고 있다.
나는 페닝톤이 University of St. Andrew에서 나의 지도하에 박사 학위 논문 작업을 한 이래로 그의 연구와 저작들에 대해 깊은 인상 을 받아 왔다. 나는 본서를 매우 기쁜 마음으로 추천한다. 복음서들 을 지혜롭게 잘 읽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중 요한 것들 중 하나이다. 나는 본서가 복음서들을 지혜롭게 잘 읽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을 도와 줄 것이라 확신한다.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 박사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신약학 교수

복음서들에 관한 많은 저서들은 자료비평, 양식비평, 그리고 편 집비평들이란 숲을 무겁게 헤치고 걸어간다. 물론 이것들은 분명 중 요한 연구 주제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복음서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책을 발견한다는 것은 얼마나 신선한 일인가! 바로 본 서가 복음서들을 문학적인 저작들로 읽어가면서 동시에 복음서들이 지닌 신학적인 중요성에 천착해 있는 이와 같은 저작이다. 본서는 너무 자주 사막같이 느껴지는 복음서 연구에서 갈증을 해 소해 주는 시원한 냉수 같은 존재이다. 비록 내가 페닝톤이 말하는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페닝톤의 주장과 논지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고려할 수밖에 없다. 페닝톤이 펼치는 논지들은 생산적 이고도 고무적인 방식들로 복음서 연구를 진척시킨다. 나는 본서가 복음서들에 대한 최상의 개론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학생들과 복음서를 가르치는 교수들 모두 이 책이 소중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대럴 복(Darrell Bock) 박사
Dallas Theological Seminary 신약학 교수

복음서들을 읽는다는 것이 미묘하고도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복음서들의 신학이 지닌 온전한 가치를 알고 복음서들을 읽는다는 것 은 중요하다. 조나단 T. 페닝톤(Jonathan T. Pennington)의 저작은 본 서를 읽는 사람들이 복음서들의 신학이 지닌 이러한 온전한 가치를 아는 일에 잘 이르도록, 동시에 지혜롭게 이르도록 도와준다.

로버트 야부르(Robert W. Yarbrough) 박사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 신약학 교수

학문적이면서도 동시에 박진감 넘치는 본서는 복음서들에 대한 과거의 실책들을 넘어서서 교부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통찰 들을 선용하고자 진력한다. 또한 조나단 T. 페닝톤(Jonathan T. Pennington)은 4중적 형태의 정경복음서는 어떻게 읽혀야 하는지를 보 여 준다. 즉 페닝톤은 복음서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적법한 입장권으로 읽혀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고 있다.

본문중에

지금까지 신약의 “복음”은 크나큰 의미를 지닌 단어이고 신학적으로 중요한 표현으로서 사도들에 의해 사용되어 예수님에 관한 자 신들의 선포된 메시지를 요약하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복음” 은 케리그마 또는 선포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 단어를 오늘날 이런 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가 그렇다. 물론 사도들이 의미했던 것보다는 보 다 협의의 의미로 종종 그렇게 말하지만 말이다. -35p-

복음서들은 이야기들과 어록들, 일화들과 연설(스피치)들을 엮어 서 하나의 내러티브를 형성하고 있다. 복음서들은 내레이터의 직접 적인 분석(혹은 심리 분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예수님의 성격을 보여 준다. 또한 복음서들은 의식적으로 서로 간에 많은 유사점을 공유하는데, 특히 모범적이고 교훈적이며 변증적인 면에서 그리고 기억을 돕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점에서 복음서들에는 충분한 정도의 공유된 특성들이 존재하며 복음서들을 그리스-로마 전통의 비오스(bios)라는 장르의 일환으로 규정할 만한 충분한 “가족 닮음”이 분명 존재한다는 공정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버릿지에게서 핵심적인 함의는 이렇다. 즉 우리는 더 이상 복음서들을 독특한 장르라고 말해서는 안 되며, 보다 중요하게 복음서들을 읽으면서 가지게 되는 우리의 기대를 비교 가능한 비오스라는 장르로부터 형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가적으로 하나를 더 지적하자면, 복음서들에 대한 우리의 해석의 초점은 반드시 예수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73p-

우리가 앞서 “복음”의 의미에 대한 설명 중에 주목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복음서들에서 모든 것들을 회복하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약속에 대한 성취로 제시되고 있다(특별히 눅 4장에 나오는 사 61장을 보 라). 이 약속은 새로운 언약 관계와 죄의 용서에 관한 약속일뿐만 아 니라,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깨어진 것을 싸매고 비뚤어진 것을 바르게 하며, 모든 질병을 치유하겠다는 약속이다. 예수님은 셀 수 없이 많은 이러한 치유와 회복을 행하셨다. 그것은 단지 예수님이 자비롭기 때문이거나 변호적으로 자신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진 특별한 분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치유와 회복의 사건들이 다가올 약속된 왕국을 보여 주는 묘사들이다. 예수님의 치유와 회복의 사역들은 곧 다가오는 예기된 추수 감사절 성찬에 앞서 부엌에서 잘 삶아진 한 조각의 칠면조 가슴살을 어머니가 은밀히 선물로 미리 입에 넣어 주시는 것 과 같다. -117p-

복음서들 간의 외형상의 불일치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예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 대한 서로 다른 기술들이다. 여기에 관련된 역사적인 질문들은 매우 많으며 복잡한데, 특히 공관복음 전승 내에 서의 차이점들과 특별히 공관복음서들과 요한복음 사이의 차이점들과 관련한 질문들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이야기는 어거스틴이 특별히 자신의 저서 『조화』(Harmony, 제3권 전체)에서 집중 하고 있는 본문들 중 하나이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읽게 되면 최후의 만찬이 언제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최후의 만찬이 공식적인 유대 전 통의 유월절 식사에서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이야기들의 차이점이 암시하듯이 이 날보다 하루 앞서 이루어졌는가? 또한 최후의 만찬 에서 실제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가? 잔을 들고 몇 번의 축복 기도 가 있었는가(한 번인가 아니면 누가복음이 보여 주듯이 두 번인가)? -149p-

복음서들의 차이점들을 다루는 데에 도움이 되는 또 하나의 관점 은 예수님의 사역이 지닌 “순회적 성격”(Itinerant Nature)을 인식하는 것이다. 복음서들에서 여러 번 우리는 예수님이 특정한 몇몇 가르침 들을 주시는 모습을 보게 되지만,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들 을 다소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차이점은 몇 가지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예수님이 지속적으로 여행하시며 말씀을 전하셨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면 예수님은 다양한 장소들에서 많은 유사한 것들을 (거의 확실히) 말씀하셨다는 점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159p-

복음서들은 신학적인 주창들과 역사적인 주창들을 동시에 하고 있으며, 이 주창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두 개의 목표가 아니라 “증언”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단일한 실행이다. 또 다시 이 둘 사이에는 균형이 요구된다. 우리는 이 둘 중에서 하나를 희생시키면 서까지 다른 하나를 너무 강조하여 결국 둘 다를 무효화시키는 우를 범한다. 만약 우리가 복음서들을 성육신과 부활이란 역사적 실체로 부터 유리된 채로, 단지 장엄한 신학적인 아이디어와 이상들을 담고 있는 저장소들로만 접근한다면 그때 우리는 역사를 잃게 된다. -250p-

앞에서 지적한 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동시에 중첩되는 또 하나의 요지로서, 역사를 “증언”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복음서 읽기에서 복음서들을 다른 사건들과 실체들을 들여다보기 위한 창문으로 사용하지 말고, 본문들 자체를 “증언” 혹은 증거들로 읽는 일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서 이야기들이 지닌 본질상 역사적인 진실성과 동시에 이 이 야기들이 “증언”하고 있는 실제 역사의 중요성을 확언하는 반면, 우리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본문을 본문-이면에 있는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재구성으로 대체해서는 안 되며, 또한 이러한 재구성을 본문 읽기의 마지막 목표로 삼아서도 안 된다. 복음서들 자체의 “증언” 외에 본문-이면의 사건들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으며, 열광적으로 이런 사건 자료들을 찾는 것은 정경복음서들과 영감 된 복음서들, 즉 이런 사건들에 대한 “증언”인 복음서들이 분명 가지 고 있는 바를 부인하는 것이다. -346p-

복음서들이 지닌 결정적이고도 우선 되는 측면은 복음서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한 하나의 계시(revelation)라는 점이다. 원천부터 모든 전반에 걸쳐 복음서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 메시아로서의 예수님, 이스라엘, 다윗 그리고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의 성취로서의 예수님에 관한 하나의 계시이다. 31 이런 점에서 복음서 읽기에 대한 우리의 첫째 되고 결정적인 목표는 복음서의 본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누구이신지 를 어떻게 드러내는가를 찾아내고 파악하는 것이다. 일차적이고도 주된 초점은 계시로서의 복음서에 주어져야 한다. -3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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