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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C는 성경 66권 다음의 67권째 메시지입니다.

흰두교, 불교, 이슬람, 가톨릭과 공통점 찾으려는 WCC - 이동주 박사

관리자 | 2014.07.23 12:16 | 조회 6279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73528

선교신학연구소장님이신 이동주 박사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크리스천투데이 발췌



 

힌두교·불교·이슬람·가톨릭과 공통점 찾으려는 WCC

 

[기고] WCC의 종교다원주의: 부산 총회 이후(1)
 

세계교회협의회(WCC) 울라프 F. 트베이트 총무가 최근 중앙위원회에서 재선에 성공해, 오는 2020년까지 기구를 이끌게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트베이트 총무는 지난해 부산총회를 이끈 인물이나, 아직까지 이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달 한국신학회에서 이동주 박사(선교신학연구소장)가 발표한 ‘WCC의 종교다원주의: 부산 총회 이후’ 원고를 두 차례에 나눠 게재한다. -편집자 주

 

                                                                       
            
▲이동주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서론

 

필자는 이미 1960년대 이후부터 부산총회에 이르기까지 WCC의 선교신학적 동향에 관해 수 차례 연구하고 발표하였다. 이제 부산총회의 종교다원주의 연구자료로, 이번 총회 때 차세대 지도자들을 위해 WCC 선교활동의 교과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M. 키나몬의 『에큐메니칼 운동』과, 특히 부산총회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의 새로운 선교지침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 변화하는 지형 속에서의 선교와 전도’ 선언문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본문의 테마를 위하여 필자는 이 책에서 상당한 분량의 제목과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WCC와 가톨릭의 합의문서들과, 『에큐메니칼 운동』 제6장 ‘타종교인들과의 대화: 우리의 이웃들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지향하며’라는 항목을 특수 참작하고, 역대 WCC 총회 보고서들과 CWME 선언문들과 지침서들을 연구하여, WCC의 종교다원주의 신학적 특징을 논하고 그 원인들을 살펴보며, 왜 WCC의 부산총회가 부정직한 다중고백적 표명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아보고, WCC의 세계연합운동 및 바티칸의 일치운동과의 관계에 관해서도 연구하게 되었다.

WCC가 ‘살아 있는 종교들’이라 칭하면서 끌어안고 기독교와 동등한 위치로 대우했던 종교들은 주로 그들의 대화 대상으로 초청했던 힌두교와 불교와 이슬람교이다. 그러면서 WCC는 종교다원주의의 전초작업이 되는 성경의 중심 개념들인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 등을 타종교들과 온 세계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으로 확대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필자는 WCC의 확대된 성경의 개념들과 종교다원주의를 서술하고, WCC가 체험 대상으로 초청했던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의 세계관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필자는 이에 힌두교와 불교의 범신론적 세계관을 간단하게 서술하여, 이 종교들이 얼마나 기독교의 창조론과 대치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피조물 숭배와 우상숭배를 초래하는지, 그리고 이슬람 경전의 반(反) 삼위일체적 신앙이 얼마나 기독교를 우상숭배자로 여기고 박해하는지를 진술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타종교들의 세계관’이라는 제목은 몇 권의 책에 해당되는 제목이다. 그러나 필자는 기독교의 창조론과 신론과 대조되는 위의 타종교들의 세계관을 간단하게 서술하여, 타종교들의 신관이 성경적 창조주 하나님과 무엇이 다른지와,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강림하신 창조주 자신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적인 강림과 타종교들의 영을 대조하며, 그로 인한 구원문제를 간략하게 조명하고자 한다.

필자는 WCC가 선교활동의 교과서로 추천한 M. 키나몬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접하면서, 이번 부산총회의 세계연합운동 내지 우주와의 일치운동이 현재 기독교 밖에서 일어나는 정치·경제 통합운동의 흐름과 병행되는 것인지를 질문하며, 순교적 신앙이 아니면 신앙을 유지할 수도, 선교를 감행할 수도 없는 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복음을 받은 우리는 장차 다가오는 적그리스도의 때를 준비해야 한다. 필자는 이 시대에 한국교회가 걸어갈 길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한국교회가 말씀에 굳건하게 서서 복음을 잘 보존하고, 온 세상에 순전한 복음을 힘껏 전달해야 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1. 부산총회의 이중진술적 표명과 종교다원주의

 

WCC의 선교신학에는 종교다원주의와 복음주의라는 두 얼굴이 있다. WCC의 이중적·혼합적 태도는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부산총회 선교선언문에서도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진술과 함께 종교다원주적인 진술을 발견하게 된다.

1948년 창립총회가 채택한 최초의 WCC 헌장은 1938년 ‘신앙과 직제’와 ‘생활과 봉사’의 대표위원들이 연합하여 작성한 헌장으로서, “WCC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공동체”라고 고백하였다. 그 후 이 헌장은 신학자들의 많은 토의 끝에 1961년 “WCC는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고백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께 부름받은 사명을 공동으로 완수하려는 교회들의 공동체이다”로 바뀌었다. 이러한 신앙고백에 준하지 않는 WCC의 종교다원주의 고백은 그와 대치되는 복음적인 진술로 장식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2013년 부산총회 선교선언문에서 고백한 다중진술 중 대표적인 복음주의 진술은 아래와 같다.

8항: 모든 기독교인들, 교회들, 그리고 회중들은 구원의 좋은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로 부름받았다. …

57항: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상에 파송하시는 것과 동시에 교회 안에 성령을 불어넣으셨다(요 20:19-23). 그러므로 마치 불이 타면서 존재하는 것처럼 교회는 선교함으로써 존재한다. 만일 교회가 선교하지 않으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80항: 증언(martyria)은 전 세계 안에 있는 전 인류에게 전 복음을 전한다는 구체적인 전도의 모양을 갖는다. … 그 목적은 세계구원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이다. 전도는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총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고난, 그리고 부활의 중심성을 명백하고 확실하게 하는 선교활동이다. 전도는 아직 복음을 접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누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의 삶을 경험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위의 고백은 WCC의 ‘대화’ 대신 복음전파와 이를 위한 ‘교회의 파송’을, 성령이 ‘세상’이 아니라 ‘교회 안에’ 강림하심을 고백하고, 선교가 교회의 생명임과 하나님께 영광이 됨도 고백한다. ‘순교’의 뿌리를 지니고 있는 교회의 ‘증거’로 인한 세계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선교활동까지 포함한다. 다만 80항 “전도는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총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동시에”라는 고백은 CWME의 문맥상 불신자 구원을 의미하는 문구로 볼 수 있다.

부산총회 선교선언문의 종교다원주의적 진술은 특히 성령관에서 나타난다. 부산총회 선교선언문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가 거의 언급되지 않고, 대신 성령과 그 보편성이 강조되면서 과거 그리스도 개념의 확대로 인해 인격적인 ‘예수’와 분리된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보편성”으로 취급되었으나, 이제 “함께 생명을 향하여” 제37항이 설명하듯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인격성이 상실되고, “만물 안에 생명 충만이 가득 찬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하시는 ‘창조자의 영”의 보편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부산총회는 위의 진술과 같이 ‘성령’을 중심으로 한 보편주의적 종교다원주의를 고백한다.

27항: 성령은 … 모든 문화와 상황(context) 안에 생명을 살리는 지혜가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것과 협력하는 것이 우리 선교의 부분이 된다. … 생명을 긍정하는 지역의 지혜와 문화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우리는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에 의해 멸시와 조롱을 받아온 전통들 속에 살아 온 사람들의 진술을 높이 평가한다. 그들의 지혜가 피조물 안에서 성령의 생명과 우리를 다시 연결할 수 있고,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이 계시되는 방법을 사고하도록 돕는다.

93항: 하나님의 영은 생명을 긍정하는 모든 문화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성령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일하시기에 우리는 다른 신앙전통들 안의 성령의 활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다양한 영성들 안에 고유한 가치와 지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선교는 “다른 사람”을 선교에 동반자로 만들며, 선교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110항: … 전도할 때에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존경과 신뢰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각각의 혹은 모든 문화의 가치를 존중하며 복음은 특정 단체에 의해 소유될 수 없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우리의 임무는 선교지로 하나님을 모셔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이다(행 17: 23-28).

위와 같이 WCC는 복음주의적인 동시에 종교다원주의적인 혼합적 통합운동을 추구한다.

WCC 한국 대표들은 이러한 혼합주의적 선언문이 나타난 이유를 광범위한 영역에서 온 사람들의 의견 수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WCC는 신학적 입장도 없고 목적도 없는 인류연합체가 아니다. 이 연합운동은 초기에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려는 목표를 두고 시작한 에큐메니칼 운동이었다. 그러나 1948년 WCC가 창립되면서 바로 1952년 Willingen 선교대회부터 선교 목적이 ‘교회를 통하지 않는 선교’를 의미하는 ‘Missio Dei’라는 새로운 선교관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새로운 선교관은 1960-70년대에 급속도로 선교 모라토리엄까지 실천한, 반 선교적 입장과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강화된 WCC의 종교다원주의는 복음주의를 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부산총회가 종교다원주의와 복음주의를 동시에 고백한 것은 이 둘 중에 하나가 거짓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누구든 종교다원주의와 복음주의 두 입장을 동시에 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1960년대부터 시작된 WCC의 종교다원주의적 전통은 부산 총회를 거금으로 후원한 한국 복음주의자들의 참여로 더욱 혼란스러운 연합운동으로 추진되었을 뿐이다.

이미 1989년 산 안토니오 CWME 선언문은 이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고백을 감사하기까지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는 우리의 선교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은혜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확신들과 증언 사역이 하나님께서 다른 신앙들을 가진 사람들 안에 계시며 일하시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과 긴장 관계에 서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 긴장 관계를 감사히 여기며, 이것을 해소해 버리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WCC가 노골적으로 이중 고백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을 현세의 ‘완전한 삶’이라고 정의한 구원관에서 발견된다. WCC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내세, 영혼구원과 총체적이고 완전한 구원, 죄 사함을 받지 못한 불신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말씀 등을 저버리고,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구원관’에 치우친 모습을 볼 수 있다. 산 안토니오 CWME 선언문 제26항은 아래와 같이 현세적 구원과 교회의 내적 구원과 교회 밖의 구원을 동시에 고백한다.

“때로 구원에 대한 논쟁은 내세에 한 개인의 영혼의 운명에 대해 집중한다. 하나님의 뜻은 지금 이곳에서의 완전한 삶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다른 구원의 길도 제시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한계를 둘 수 없다.”

이렇게 WCC는 서로 상반된 주장을 동시에 고백하는 이중적이고 혼합적인 특색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러한 이중고백적 거짓에 익숙해지고 있다.

WCC ‘세계선교와 복음화위원회(CWME)’가 2000년 고백한 ‘일치를 향한 오늘날의 선교와 전도’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외에 다른 구원을 이야기할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어떤 제한을 둘 수 없다. 이상의 두 문장 사이에는 긴장이 있으나, 이 긴장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하는 산 안토니오 선언문과 동일한 모순적인 이중적 고백을 단숨에 표명한다. 이러한 과거의 다중고백이 부산총회의 선교와전도 선언문에서도 마찬가지로 진술된 것이다.

1971년 태국 치앙마이 WCC 신학협의회는 “다른 살아 있는 종교들과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지침서(Guidelines)”를 만들었다. 이 지침서는 타종교들을 “살아 있는 신앙”으로, 타종교인들을 “다른 살아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로 묘사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대속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이 선물로 받은 영원한 “생명”과 같은 동일한 생명이 타종교 안에도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WCC는 같은 해 ‘살아 있는 신앙들과 이데올로기들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분과를 설립하였다. 우리는 WCC의 대화 분과가 이 때부터 타종교들을 “살아 있는 신앙들”로 호칭함으로서 기독교와 다르지 않은 생명 있는 종교로 대우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산총회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없는 타종교의 ‘생명’만을 절대적 가치와 같이 중히 여기는 선언문을 작성한 것이다. ‘함께 생명을 향하여’라는 새로운 선교선언문에서 추구하는 ‘생명’은 벌써 40년 전부터 타종교들의 생명과 혼합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WCC 선교활동의 지침서 M. 키나몬의 『에큐메니칼 운동』 제6장 ‘타종교인들과의 대화: 우리의 이웃들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지향하며’를 보면, WCC 선교분과가 얼마나 철저하게 타종교들과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는지를 알 수 있다.

 

2. 가톨릭 중심적인 종교다원주의

 

1961년 제3차 WCC 뉴델리 총회에서 시작된 종교다원주의와 병행하여, 가톨릭교회도 제2 바티칸 공의회의 Nostra Aetate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는 이 종교들에서 나타나는 진실하고 거룩한 것은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는다”면서 공개적으로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 WCC의 ‘대화-프로그램(1971년)’보다 수 년 앞서 확실하게 종교다원주의를 표명하였다. Nostra Aetate는 타종교들과 협력적이고 종교다원주의적인 입장을 아래와 같이 표명하였다.

“가톨릭교회는 이들 종교들 속에 있는 진리와 성스러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교회는 그들의 삶과 행동방식. 개념들과 교리들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린다. 그것들은 … 모든 사람을 깨우쳐 주는 진리의 빛들을 반영하고 있다. …

교회는 또한 무슬림들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그들의 오직 한 분이신 살아 계시고 실존하시며 자비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시며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들의 신앙에서도 … 아브라함이 그 자신을 하나님의 계획에 복종했듯이,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숨겨진 섭리에 주저함 없이 자신들을 복종시킨다. 비록 그를 하나님으로 이정하지는 않지만, 예수를 선지자로 존경하며, 성 마리아에게 존경을 표하며, 때로는 그들의 이름을 경건하게 부른다. 더 나아가 그들의 최후의 심판과 죽은 자의 부활 후에 있을 하나님의 보응을 기다린다. 이런 이유에서 그들은 올바른 삶을 아주 귀중하게 여기며, 특별히 기도와 선행과 금식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한다.”

교황청은 에큐메니칼운동 ‘신앙과직제’ 설립 이전인 1919년, 로마를 방문한 5명의 에큐메니칼 창립위원인 성공회 사절단을 향하여 교황 베네딕트 XV세가 “교황은 그가 성 베드로의 계승자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하나의 우리(fold)와 한 분 목자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보다 큰 염원이 없다고 말씀하였다. …”면서 교황 수위권 중심의 종교통합운동을 확언하였다. 교황 베네딕트 XV세는 기독교인들 간의 일치가 가능한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에서 떨어져 나갔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하나의 참된 교회로 다시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로마가톨릭의 토대에서 ‘재결합’(reunion)하기 위한 ‘돌아옴’(return)을 의미하는 것이다.

‘1957년 이후의 일치를 위한 추구: 하나의 가톨릭 시각(2007)’의 논문에서 애버리 덜레스 추기경 역시 가톨릭 교황의 수위권에 관해서 명료하게 선포하였다.

“가톨릭교회의 가장 뚜렷한 교리 중 하나는 확실히 베드로의 승계자로서의 교황의 수위권 문제이다. 이것은 제1 바티칸 공의회가 분명하고도 비타협적인 언어로 내놓은 것이다. 우리 가톨릭교인들은 이 교리를 아끼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우리끼리만 간직하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믿는 바로는, 베드로의 계승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시적인 머리로서 그리스도께서 의도하신 바이다. 그의 사역을 수용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교회가 그 일치의 표징과 상징으로서 가지기를 원하셨던 그러한 보편적인 일치를 결코 획득하지 못할 것이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선언한 바와 같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코뮤니온을 가지는 주교들에 의해 다스림을 받고 있는 교회 안에 존재한다”고 선언하였다. 이 공의회는 에큐메니즘을 향하여 가톨릭교회의 원칙들을 공표하였다. 즉, “그리스도께서 … 12 사도단에게 가르침과 다스림과 거룩하게 하심의 교제를 위탁하셨다... 특히 그리스도께서는 12사도들 가운데 베드로를 택하셨다. 그리고 그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에 그분의 교회를 베드로 위에 세우시겠다고 결정하셨다. 그분은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약속하셨다. …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사랑의 고백 후에 … 그분의 모든 양 무리를 베드로에게 위탁하시면서 영원토록 교회의 모퉁이돌(엡 2:20)과 우리의 영혼들의 목자로 머물러 계심으로써 완전한 일치 안에서 목양을 하고 계신 것이다. … 교회의 일치 속에서의 코이노니아를 온전케 하심은 사도들과 베드로를 머리로 하는 이들의 후계자들의 신실한 복음설교를 통하여, 그들의 성례전 집례를 통하여 그리고 사랑 안에서의 통치를 통하여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경을 통해서라고 고백하지 않고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통해서 ‘충만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구원의 가장 포괄적인 수단인 오직 그리스도의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의 수단들의 충만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 … 우리의 주님께서 새 언약의 모든 복을 오직 베드로를 머리로 하는 사도단에게 맡기시어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신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온전히 합체되게 하려는 것이다. … 완전한 교회적 코뮤니온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조금씩 극복될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만찬을 함께 나누면서 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그분의 교회에게 내려주신 유일한 교회의 일치 안으로 회집될  것이다. 우리가 믿기로 이 일치는 가톨릭교회 안에 있다. 가톨릭교회는 그것을 잃어버릴 수 없다. …”

가톨릭교회가 WCC에 대해 베드로의 수장성과 그 후계자들의 권위를 철저하게 주장하는 것은 WCC를 결단코 가톨릭교회와 교황 아래로 흡수시키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반면 2012년 WCC 중앙위원회는 ‘하나의 공동 비전을 향하여’ 제39항에서 “상호간 대화 속 … 항상 하나님의 교회의 통일성 안에 하나의 전통을 체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고백하고는 개혁교회적인 어떤 교리적 조건도 내걸지 않은 반면, 가톨릭 교회는 개혁교회를 향하여 ‘우리의 갈라진 형제들’이라 칭하면서, WCC 여러 부서의 회원이 됐지만 정식 회원은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 ‘갈라진 형제들’이 ‘유일한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교황 밑으로 귀환하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강력하게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이 두 거대한 기관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통합될 것인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톨릭교회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사제들이 WCC에 참여해 함께 만든 이 BEM 문서로 인해 ‘분리된 교회들’의 교회 일치운동이 가톨릭과 재결합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희망하는 문서라고 호평하였다.

특히 BEM 성만찬론에서 발견되는 가톨릭 신학을 살펴보면, 가톨릭의 미사와 화체설과 반복적 희생제와 죽은 자와의 교제 및 만인구원신앙이 공존한다. 월터 카스퍼 추기경은 2007년 출판한 ‘영적인 에큐메니즘을 위한 안내서(A Handbook of Spiritual Ecumenism)’라는 책에서 교회 일치의 완성에 도달하려는 성만찬 예식에 관해 “성만찬 떡을 떼는 중 주님의 몸을 진실로 먹으면서, 우리는 주님과의 그리고 서로와의 커뮤니온에로 취해진다”며 가톨릭 전통적 화체설은 교회 연합을 위해 양보할 수 없는 교리라고 주장한다.

‘성만찬’ 제20항과 24항 설명에 의하면, BEM의 구원관은 “사람이 각각 회개하고 하나님과 화해하고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행 2:38f, 고후 13:5), 각자의 믿음을 근거로 하지 않는 ‘만인구원’ 또는 ‘자동구원’ 사상과, 온 세상을 대신하여 봉헌을 드리는 대표적 행위”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개혁교회에서는 성찬식 집례자가 단 일회적으로 온전하게 희생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빵과 포도주를 은혜의 주님으로부터 받는다고 하지, 봉헌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봉헌(offering)’은 가톨릭 신부가 미사 때마다 화체설적인 떡과 포도주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BEM의 성만찬 항목 제11항의 “… 모든 성도들 및 순교자들과 교제하는 우리” 라는 고백은 가톨릭적 신앙고백이다. 개혁교회는 성도의 교제가 죽은 자들과의 교제로까지 확대된다고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성도간 교제는 산 사람들과의 교제이고, 죽은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은 성경이 엄격하게 금하기 때문이다(레 20:27, 대상 10:13, 눅 16:19-31). 또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는 어떤 피조물이나 죽은 자들에게 기도하지 않는 개혁교회 신앙과는 대조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은 죽은 자들에게 기도하고,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가톨릭 신도들이 자유롭게 타종교와 신앙적인 교류를 하고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타종교를 수용하고, 사람이 만든 형상들을 숭배할 수 있는 이유는 십계명 속 제2계명인 우상숭배 금지에 관한 계명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십계명에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제2계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톨릭 신도들이 죽은 성인들이나 우상에게 기도하는 것이 개혁교회처럼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톨릭은 그들의 종교다원주의적 목적에 따라, 1986년 10월 27일 이탈리아의 성지 아시시에서 교황청 주최로 전 세계 40여개 종교 대표단 200명을 초청하여 평화축제를 열고 ‘세계평화 기도회’를 개최하였다.

 

3. WCC의 타종교 이해와 제 문제

 

WCC는 타종교에 관해 “추상적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되며 살아 있는 만남을 통해서 경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타종교에 관한 지식은 몇 차례 만나 경험해 본 것에 의해 얻은, 심히 얕은 지식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추상적인 것이나 인간의 경험, 현상파악에 의한 지식은 다 ‘하나님의 계시’인 절대적인 지식과 충돌하는 인본적이고 심히 제한적인 것에 불과하다. 결국 WCC가 타종교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로 WCC는 타종교들의 세계관조차 연구한 흔적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무지 가운데 타종교들을 “살아 있는 신앙들”이라 호칭하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무모한 태도인가? 필자가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이유는 타종교들의 세계관이 아래와 같기 때문이다.

WCC가 상대하는 세 개의 타종교 중 힌두교는 고대로부터 다신관, 범신론, 무신론, 유신론 철학을 다 포괄하는 혼합종교다. 힌두교의 신들은 천계, 지계, 공계의 자연신들과 인격신들을 다 포함하여 3억 3천만의 신을 숭배한다. 힌두교에는 세 가지의 구원의 길이 있으나, ‘명상의 길(Jnanamarga)’만이 구원의 완성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 길은 우주적 실재라는 대우주(Makrokosmos)와 순수 자아(Mikrokosmos)와의 합일을 꾀하는 것으로, Brahman이라는 비인격적 보편적 자아에 Atman이라는 개체적 자아가 마치 대양 속으로 파도가 침몰해서 대양과 파도가 하나를 이루는 것 같이 우주와 자아는 융합되어 본질적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는 절대자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힌두교의 절대자는 대양에 비교되는 대 우주 Brahman이고, 성경의 하나님과 같은 우주 초월자인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힌두교에도 Brahma라는 창조신을 숭배하고 있으나 Brahma는 다른 신들과 같이 우주의 일부일 뿐이다.

WCC가 힌두교적 ‘모순적 포괄주의’를 담대히 수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힌두교권 신학자들의 공헌과 더불어 힌두교 세계관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WCC의 대화 체험자들이 힌두교도들과 연합예배를 드리고 그들이 ‘신을 경외한다’ 해서, 그 신을 우주를 창조하신 성경의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으로 간주하는 것은 피조물숭배자를 옳다고 인정하는 사형죄에 해당하는 것이다(롬 1:18-32).

또 힌두교는 유지신이라는 비쉬누(Vishnu)를 숭배한다. 힌두는 이 신이 Avatar라는 10개의 화신 내지 강신으로 나타난다고 믿는데, 이 화신 중 으뜸이 되는 숭배대상은 크리슈나이다. 1971년 WCC의 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인도의 가톨릭 신부 R. 파니카(R. Panikkar, 1918-)는 바울이 아덴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 예배하는 그리스도인에게 그 신을 알게 해주겠다고 한 아레오바고(Areopag) 설교에서 힌트를 얻어 “힌두교 속에 있는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라는 책을 썼다. 그의 사상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이방종교 속에도 역사하시는 동일한 하나님이며, 사람들이 이러한 것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그곳에 하나님은 존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불신자의 하나님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역시 마찬가지로 힌두가 비록 알지 못해도 힌두교 안에서 현재하신다는 사상이다. 이 역사성 없고 오직 신화적 크리슈나를 ‘인도에 숨어계시는 그리스도’라며 역사적으로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신학은 많은 인도인들에게 거짓 그리스도를 따르게 한 신학자의 범죄행위이다.

불교는 성경적 창조론과 완전히 대치되는 무신론과 힌두교적 범신론의 혼합종교이다. 무신론적 세계관을 가진 불교의 종교적 출발점과 목표는 인간의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고(苦)에서의 해방이다. 그 구원책은 창조된 인간과 인간의 타락과 고통의 근원이 되는 인간의 죄악과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을 전혀 알 길 없는 범신론적 카테고리 안의 무신론적 방법이다.

불교의 ‘사성제’ 교리가 인간의 존재론과 구원론을 설명해 주듯, 인간의 실존은 苦이고(苦諸), 욕망과 집착으로 인해 번뇌가 소집되기 때문에 인간이 생성되고, 이 생성의 이유를 ‘집’이라고 하고(潗諸), 인간이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은 모든 번뇌와 집착을 끊는 방법이고(滅諸), 구원이란 인간의 모든 苦를 소멸하고(道諸) 해탈에 도달하는 것이다.

해탈이란 苦로부터의 해방이고, 대승불교도는 이 상태를 “모든 모순과 대립을 완전히 초월하여 모순이 융합하는 세계” 또는 주체와 대상, 단수와 복수, 참과 거짓의 모든 대립을 극복한 ‘포괄자(das Umgreifende)’ 상태라고 한다. 이 상태를 열반이라고 한다. 이 ‘생존시 열반’을 독일의 불교학자 M. Winternitz는 “강경중적 마비”(Kataleptische Starre)로, A. Forke는 “완전최면”(vollstäntige Hypnose) 상태로, 일본의 알려진 선불교 학자 D. T. Suzuki는 “영적 자살”(geistiger Selbstmord)로 해석하고 있다. 또 불교도들은 ‘죽음으로 인한 열반’을 입멸(入滅)이라 한다. ‘입멸’이란 등잔불을 끄듯이 괴로움을 느끼는 감각기관과 의식을 완전히 멸한 상태를 말하고, 불교도들은 석가모니의 죽음을 입멸이라고 한다.

이처럼 기독교의 창조론 및 창조주 신앙과 전혀 관계 없는 무신론을 WCC가 기독교의 복음과 같은 가치로 인정하고, ‘타락’과 ‘죄인’을 인정하지도 않으며, 죄 사함을 받은 일도 없을 뿐더러 받아야 되는 줄도 알지 못하고, 죄의 결과인 고통으로부터의 탈출을 구원으로 오해하는 불교적인 구원관을 WCC는 기독교의 구원과 대등한 구원으로 착각하고 종교다원주의를 수행한다. 이렇듯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수행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기독교의 구원을 현세적 행복과 평안으로 제한하고, 신앙의 가치를 영적 차원의 구원을 상실한 세상의 해방신학적 샬롬 구현으로 보기 때문이다.

위의 범신론 종교들과 상이한 유일신교인 이슬람교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앙을 우상숭배로 본다. 이슬람교 경전은 아래와 같이 삼위일체설을 극단적으로 부정한다.

“하나님과 선지자들을 믿되 삼위일체설을 말하지 말라 너희에게 복이 되리라. 실로 하나님은 단 한 분이시니 그분에게는 아들이 있을 수 없노라(Sure 4:171)”.

그리고 꾸란은 Sura 5:116-117에서도 알라 앞에 올라간 예수 그리스도의 입을 통해서 자신의 신성을 부정하도록 하여 성경의 기독론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아들 예수야 네가 백성에게 말하여 하나님을 제외하고 나 예수와 나의 어머니를 경배하라 하였느뇨 하시니, 영광을 받으소서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아니했으며 그렇게 할 권리도 없나이다. 제가 그렇게 말하였다면 당신께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 …”

그리고 Sura 3:59에서 꾸란은 예수가 흙으로 지음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랬듯이 예수에게도 다를 바가 없도다. 하나님이 흙으로 그를 빚어 그에게 말씀하셨다. 있어라, 그리하여 그가 있었느니라.”

이에 더하여 꾸란 4장 157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철저히 부정하여, 무슬림들이 대속의 진리와 사랑의 하나님을 절대로 믿을 수 없게 하였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 하였다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

이 뿐 아니라 이슬람교는 Sura 9:29에 ‘성서의 백성’이라고 하는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박해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서의 백성들”은 저주스러움을 느낀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서의 백성들이 이슬람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는데, 그것은 인생이 저주스러우리 만큼 과다한 인두세를 내고 살아남는 길이다.

“하나님과 선지자가 금지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성서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항복하여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성전하라. 그들은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끼리라.”

예수께서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하신 말씀과 대조적으로, 꾸란은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Su:ra 9:5)고 명한다.

위와 같이 WCC의 대화상대자들인 힌두교와 불교는 창조와 초월자와 창조주가 존재할 수 없는 원형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이슬람교는 반삼위일체적 유일신관을 가지고 있으며 강력한 반기독교적 입장을 취하면서 전혀 기독교와 융합이나 타협을 원하지 않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톨릭과 WCC는 세계일치운동과 종교다원주의 입장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받은 구원을 귀중히 여기지도 않고, 타종교인들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생각조차 잃어버렸다.

현대 WCC의 시야는 극단적으로 인간적이고 횡적인 관심에 집중되고,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영적 문제 및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미래 천국에 관한 종적 시야가 상실됐다.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것보다 육적 문제와 땅의 문제 해결을 더 우선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WCC 신학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개인 구원과 회심은 중요하지 않다. 대신 온 세상의 샬롬, 온 우주적 화해, 상생(living together), 현재적 구원 내지 평화 등이 최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이 사상은 한국에서 불교 같은 타종교의 종교 목적과 병행되는 것이므로, WCC와 타종교들의 연합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필자는 WCC의 종교다원주의적 선교관에 대하여 큰 우려를 표명한다. 이미 1961년 제3차 WCC 총회부터 정교회를 WCC 정식 회원교회로 삼았고, 뒤이어 ‘신앙과직제’와 ‘세계선교와 복음화위원회’(CWME)에 참여하는 가톨릭과 함께 ‘가시적인 일치운동’만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WEA(세계복음연맹)와도 공통점을 찾아내 연합하고, 로잔운동과도 연합을 시도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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