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 하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 1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진행해 온 신적 폭력 문제를 십자가 형태의 해석학으로 다뤄야 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두 번째 책에서는 십자가 형태의 논지(the cruciform thesis)를 기초로 한 네 가지 중요한 원리(십자가 형태의 수용의 원리, 구속적인 철회의 원리, 우주적 갈등의 원리, 반자율적인 힘의 원리)를 전개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폭력적 신적 묘사는 십자가 렌즈를 통해 해석해야 한다. 골고다에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행위가 일어나고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폭력이라고 단정하는 모든 행위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다른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셔서 선한 길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시고 용납하시며 내어 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서론 다른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음 6
제4부 십자가 형태의 수용의 원리 17
제13장 겸손하신 하나님: “가면” 계시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분출 18
제14장 하늘의 선교사: 율법, 민족주의 그리고 폭력을 수용하시는 여호와 94
제5부 구속적인 철회의 원리 172
제15장 신적 아이키도: 하나님의 “진노”의 계시로서의 십자가 173
제16장 죄와 벌: 신적 철회와 죄의 자기-파괴적 성격 220
제17장 하는 것과 허용하는 것: 성경의 이중적인 발화 형태가 지닌 십자가-중심적인 중요성 275
제18장 잘못에 대한 신적 책임의 문제: 구속적인 철회 원리를 반대하는 것들에 대한 대답 320
제19장 신에 의한 종족 말살에 대한 변호: 정복 내러티브에 대한 전통적인 변호들의 부적합성 351
제20장 하나님의 비폭력적인 계획이 실패할 때: 정복 내러티브의 십자가-형태의 해석 401
제6부 우주적 갈등의 원리 448
제21장 하나님의 전쟁: 우주적 갈등과 구약 449
제22장 십자 포화에 갇힘: 우주적 갈등과 신약 490
제23장 지옥이 풀어질 때: 구속적 철회와 우주적 갈등 557
제24장 용을-삼키는 용: 우주적 차원의 아이키도 전쟁의 예들 609
제7부 반-자율적인 힘의 원리 666
제25장 난폭한 곰들과 치명적인 수호신: 신적 능력이 오용될 때 667
후기 두루마리의 비밀을 열기 730
부록 V 약속의 땅에 있던 점증하는 폭력 745
부록 VI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함 749
부록 VII 사탄의 제국이 스스로 분열할 수 있을까? 755
부록 VIII 메추라기 재앙 758
부록 IX 아브라함의 시험 763
부록 X 대체설(혹은 폐기설, supersessionism)이라는 이슈 778
참고문헌
보이드는 충격적인 폭력과 십자가 사랑과 평화라는 양대 축을 십자가 형태의 해석학으로 수렴한다. 보이드
가 이룬 업적은 놀라운 상상력을 통해 예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성경을 새롭게 읽는 법을 보여 준 것이다.
스캇 맥나이트 박사 | Northern Seminary 신약학 교수, 『예수 왕의 복음』 저자
보이드는 놀라운 책을 저술했다. 신학적으로 경각심을 불어넣어 주며, 많은 어려운 본문을 세심하고 철저하게 다룬다. 구약과 신약을 놀랄 정도로 깊이 있게 오가며 신학 분야 전반에 걸쳐 주의를 끌기에 마땅한 저작이다.
테렌스 E. 프레타임 박사 | Luther Seminary 은퇴교수
보이드는 텍스트를 듣고, 문맥을 들으며, 해석 역사에 귀 기울인다. 최종적 형태의 텍스트에 나타난 십자가
형태의 신학을 가장 분명하게 들려 준다. ‘대표작’이며 ‘대가답다’라는 표현은 이 두 권에 어울리는 말이다.
윌리암 H. 반즈 박사 | University of Minnesota 교수
보이드는 신적 폭력은 전략적이고, 교훈적이며, 인간의 문화와 언어에 관해 수용적이지만,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내어 주심이 진리임을 강조한다. 성경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법을 제시한다.
월터 브루그만 박사 |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 교수
보이드는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T. F. 토렌스와 칼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의 연구에 근거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하나님을 지향하며 우리가 이 폭력적인 세상에 어떻게 관여할지 생각하게 한다.
마일즈 베른츠 박사 | Hardin-Simonns University 교수
이 세상에서 구약의 폭력은 단지 용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사랑하시고 모든 폭력을 거부하시는 하나님을 밝히 드러낸다. 우리 시대의 탁월한 신학적 사고를 지닌 한 사람의 놀랍고도 충격적 성취이다.
데이비드 피취 박사 | Northern Seminary 교수, Faithful Presence 저자
구약에 나타나는 신적 폭력은 최근 기독교 사상가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이다. 보이드는 제3의 길을 모색하는데, 초기 교회가 지녔던 그러나 지금은 잃어버린 통찰들을 회복하는 거의 새로운 길이다.
펄 로즈 에디 박사 | Bethel University 교수
만약 독자들이 보이드의 논증들을 잘 따라간다면, 그가 자신의 결론에 이르기 위해 세심한 연구와 분별력 있는 사고가 일관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 다루는 이슈들에 대한 배움의 크나큰 보상을 누리게 될 것이다.
마크 타이센 네이션 박사 | Bonhoeffer the Assassin? 공동 저자
보이드는 폭력적인 하나님에 대한 구약 묘사들은 갈보리에 계시된 자기희생적이며 비폭력적인 사랑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저서는 통찰력 있고, 시의적절하며, 대담하고, 논쟁적인 제안이다.
마이클 J. 고만 | Saint Mary’s Seminary and University 교수
루터는 하나님의 성격에 관한 결론들을 하나님 자신의 “이질적인 일”에서 끌어내는 것이 매력적이라는 점을 인정했지만,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은 단순하게 하나님을 말씀 가운데 계신 분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반드시 저지되어야 할 일종의 유혹이라고 주장했다. 루터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의 참된 성격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가 되고 있지 자신이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악한 대행자들 가운데 계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단순하게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한다. 이제 곧 보겠지만 정확히 바로 이런 이유에서, 루터는, 하나님은 악한 대행자들을 통해서 결정론적으로 이루시는 일은 일종의 공포 가면이며, 그 이면에서 하나님은 맥없이 우리로부터 숨어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 p. 74
즉, 참 하나님은 피 흘림을 요구하지 하지 않고서도 죄를 용서하시지만,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절대로 피를 흘리지 않고도 살 수 있게 하신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정경이 보여 주는 하나님에 대한 폭력적인 묘사들이 그렇듯이, 죄를 짊어지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십자가라는 이 하나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죄를 드러내고 죄를 파괴하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 물론 이 십자가에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모든 잘못된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십자가는 전사의 신의 영원한 십자가 죽음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 - p. 92
이렇게 모세 율법이 더 진보된 것은 진리의 길로 세밀하게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치시는 하늘 선교자의 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구약 율법이 담고 있는 폭력이 고대 근동 지역의 통상적인 윤리적인 입장을 반영하는 정도로, 율법의 폭력성은 어느 시점에서 강제하지 않는 하늘 선교사께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서 자신의 언약 백서의 오류 있고 문화적으로 조건화된 마음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 대한 영감된 증언이 여호와를 오히려 전형적인 법-지향적이며 폭력을 묵인하는 고대 근동 지역의 신처럼 죄의 거울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들을 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 p. 125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타락한 세력들은 악하고 그러므로 사랑을 이해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타락한 반역의 인류를 위한 사랑 때문에 한 인간이 되었다는 가능성을 결코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이 알았던 것은 오직 어떤 이유에서든지 만약 성자가 죽을 운명의 인간이 되어 이런 통치자들의 지배 영역에 들어왔다면, 그는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분명한 점은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런 우주적인 대적들의 의표를 찔렸으며, 이들의 악한 의도들과 사랑에 대한 자학적인 무지가 이들 자신에게 돌아가게 하셨다는 점이다. - p. 217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라는 기준은 이런 가능성을 배제하는데, 왜냐하면, 이 기준은 하나님은 압제당하는 자들의 해방자이심을 확언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은 폭력에 호소하셔서가 아니라 압제당하는 자와 압제자 모두에 대한 자신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드러내셔서 해방하신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된 문제로, 십자가는 하나님 능력의 성격에 대한 궁극적인 계시이기 때문에(고전 1:18, 24), 십자가는 왕과 군대들이 하나의 신적 심판 행위로서 “넘겨졌을” 때 “성령의 능력”이 여기에 개입되어 있다는 어떤 개념도 배제한다.- pp. 445-446
내가 믿기에, 이 점 즉 하나님이 직접 폭력을 일으키는 분으로 묘사되는 내러티브들을 우주적 갈등이라는 메타-내러티브 문맥에서 재구조화하는 것이 어떻게 이 내러티브들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는지가 지금쯤 분명해졌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성격은 갈보리에서 온전하게 계시되었다고 믿는다면 그러면서도 지구를 완전히 에워싸고 있는 우주적 갈등을 기억한다면, 표면상으로는 갈보리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격과 완전히 달라 보이는 이 내러티브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의 이런 성격 자체에 대한 증거가 된다.- p. 665
내가, 예수께서 행사하셨던 신적 능력과 권세가 반-자율적인 방식으로 예수 안에 있었다고 주장할 때, 나는, 예수께서 부여받은 신적 능력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만, 그 능력이 사용되는 방식은 이제 예수의 온전한 인간적인 뜻의 능력 아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사탄의 유혹을 예수께서 이기신 것과 자기-방어를 위해 “천사 군단을 부르기를 거절하셨던 것을 찬양-받기에 합당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니라 예수에게 주어졌던 신적 능력과 권세가 지닌 반-자율적인 성격이었다. - pp. 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