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서신(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에 대한 원어적 분석과 정통 신학에 근거한 주해를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얇지만 탁월한 저서이다. 사도 요한이 말하고자 한 핵심을 잘 드러내어, 오늘날 우리를 향한 메시지로 전달해준다.
저자 서문 _5
제1장┃요한일서 - 9
1. 서론_10
2. 서언(1:1-4)_14
3. 빛 가운데 행하라(1:5-10)_19
4. 대언자와 그 계명(2:1-6)_25
5. 새로운 계명(2:7-11)_30
6. 요한일서를 기록한 동기(2:12-14)_33
7. 세상을 사랑치 말라(2:15-17)_35
8. 적그리스도(2:18-26)_39
9.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지식(2:27-29)_47
10. 주님께 있는 자는 범죄치 않음(3:1-12)_50
11. 형제애의 본질(3:13-24)_65
12. 하나님의 영과 사탄의 영(4:1-6)_78
13. 서로 사랑하라(4:7-21)_84
14.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5:1-12)_101
15. 타인을 위해 기도하라(5:13-17)_118
16. 참된 그리스도인(5:18-21)_126
제2장┃요한이서 - 132
1. 서론_133
2. 인사 (1-3절)_135
3. 사랑으로 행하라(4-6절)_139
4. 거짓 교사를 경계하라(7-11절)_142
5. 마지막 인사 (12-13절)_149
제3장┃요한삼서 - 151
1. 서론_152
2. 인사(1-4절)_153
3. 순회 전도자를 후대함(5-8절)_157
4. 디오드레베에 관하여(9-10절)_159
5. 데메드리오를 본받으라(11-12절)_162
6. 마지막 인사(13-15절)_164
“태초부터”(아프 아르케-스, ἀπ’ ἀρχῆς): 창세기 1:1의 태초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시작했던 그 시점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도 요한이 말하는 태초는 창조 행위 이전, 즉 영원 전의 태초를 의미한다.
“있는”(엔, ἦν): 이것은 ‘에이미’(εἰμί, 내가 있다, 나는 ~이다)의 미완료 과거형으로서 존재의 계속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존재를 계속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p. 14.
사도 요한이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메시아)로서 이 땅에 존재하였고,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일들이 결코 공허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실재성(實在性)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 당시 교회에 침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부정하려는 이단 사상인 영지주의의 가현설이 있었는데, 이러한 적 그리스도적 사상을 배격하기 위함이었다. p. 15.
사도 요한이 여기에서 사용한 “사귐”(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이란 말은 “영적 교제”를 뜻한다. 즉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는 자들이 믿음으로 사죄(赦罪)와 중생과 구원의 은혜를 얻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사도들과 동등하게 신앙 안에서 영적 교제를 갖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이 영적 교제는 더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교제가 되는 것이다. 이 교제야말로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축복 중에 최고의 축복이 된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p. 17.
그런데 도와줄 능력이 있으면서도 사랑의 마음의 문을 단단히 닫아 버리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찌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있는 것이 행위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이 이와 같이 외적 친절을 말하는 것은 선행의 참 방법과 우리 안에 내재하여 다스리고 있는 것이 무엇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p. 70.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사랑 중에 최고의 것은 “속죄”이다. 죄의 값은 사망인즉(롬 6:23), 그 사망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생명뿐이다. 생명은 피에 있다(레 17:11, 14). 그리고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히 9:22; 레 17:11). 피가 아니면 속(贖)할 수 없다(민 35:33)고 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최초의 인간을 위해 생명의 피로 속죄할 길을 열으셨다(창 3:21). p. 87.
그리스도인의 삶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는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고 영원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데 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와 목회자의 마음을 얼마나 기쁘게 해드리고 있는가?
반성해 보자.
오늘 목회자들은 목회의 현장에서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있는가?
그리고 기뻐할만한 일들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목회자들이 사람들이 주는 박수갈채와 넉넉한 대우 때문에 기뻐하고 있는가?
양 떼가 영적 기갈 상태에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는지?
세상 권력과 짝하여 명예를 얻으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는지? p. 140.
올바른 기독론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육신하셔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구세주이시며, 육체적 생명의 부활을 하시고 승천하셔서 인류의 심판을 위해 재림하실 메시야,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본질(同一本質, 호모우시오스, ὁμοούσιος)이신 성자(聖子) 되심을 믿는 기독론이다. 이러한 기독론을 믿는 자라야 성부와 성자를 모실 수 있는 것이다. p.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