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독자들로부터 받은 구약의 난해한 질문들을 모아서 그 중 101가지를 발췌하여 문답형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저자는 개혁신학이나 복음주의에 속한 주석이나 학문적으로 정평이 난 신학 또는 언어사전을 활용하여 구약의 궁금한 사항들을 평신도들도 이해 할 수 있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 서문 / 5
약어표 / 8
1. 창세기 1:1의 번역과 의미 / 14
2. ‘바라’와 ‘아사’에 의한 과학적 설명 / 18
3. 에덴동산의 위치와 신학적 의미 / 20
4. 아담은 어디에 있었나? / 22
5. 아담의 이름과 백이십 년의 수명 / 24
6. ‘남편을 사모한다’는 의미 / 26
7. 아벨의 제물과 가인의 제물 / 28
8.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와 의미 / 30
9. 가인이 두려워한 자 / 32
10. 여호와를 처음 부른 것과 처음 단을 세운 곳 / 34
11. 하나님이 에녹을 데려가셨다는 의미 / 36
12. 고페르와 역청 / 38
13. 방주가 뜬 물의 깊이 / 40
14. 바벨탑과 지구라트 / 42
15. 데라의 계보 / 44
16. 멜기세덱과 예수님 / 46
17. 세상의 도리 / 48
18. 이삭이 거해야 하는 땅 / 50
19. 아브라함과 아모리 족 / 52
20. 야곱의 자녀출생 기사 / 54
21. 야곱의 재산증식 방법 / 56
22. 메시아의 계보에 들어온 다말 / 58
23. 요셉을 만났을 때 유다의 나이 / 60
24. 요셉의 ‘점치는 잔’ / 62
25. 모세를 죽이려 하신 하나님 / 64
26. ‘강퍅하게 하다’의 의미 / 66
27. 유월절 어린 양의 수 / 68
28. 하나님과 대면한 모세 / 70
29. 박쥐와 메뚜기의 분류 그리고 부정한 돼지 / 72
30. 희년의 현대적 의미 / 74
31.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인구수 / 76
32. 제사장 축복의 용도와 의미 / 80
33. 나팔 소리와 하나님의 인도 / 82
34. ‘순종한’ 발람을 죽이려는 이유 / 84
35. 하나님을 섬긴 발람? / 86
36. 발람은 악한 사람인가? / 88
37. 발람의 죽음 / 90
38. 셋의 자손과 아담의 아들 셋 / 92
39. ‘눈’(nūn) 첨가어와 부정사 접미사 / 94
40.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96
41. 십일조의 종류와 용도 / 98
42. 저주로 언급된 치질 / 100
43. 에훗은 장애인? / 102
44.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단 지파 / 104
45. 삼손 이야기에 적용된 ‘성경적 유형-장면’ / 106
46. 이름을 통한 메시지 코드 / 108
47. 여성을 받는 남성 인칭대명사 / 110
48. 말론의 아들? 보아스의 아들? / 112
49. 사울의 반복된 질문: 누구의 아들이냐? / 114
50. 다윗과 요나단의 나이 차이 / 116
51. 신접한 여인이 불러올린 사무엘의 영 / 118
52. 인구조사에 대한 다윗의 책임 / 120
53. 솔로몬의 산당제사 / 122
54. 솔로몬의 일천번제 / 124
55. 솔로몬의 즉위년 산출근거 / 126
56. 이스라엘과 유다의 분열원인 / 128
57. 열 지파 이스라엘이란? / 130
58. 마아가는 누구의 어머니인가? / 132
59. 엘리야는 우울증 환자인가? / 134
60. 엘리사는 나아만의 혼합주의를 인정했는가? / 136
61. 도끼가 떠오르는 엘리사 사역의 의미 / 138
62. 앗수르를 친 바로 느고? / 140
63. 야베스의 기도에 대한 바른 이해 / 142
64.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셨다? / 144
65. ‘감동시키다’와 ‘하나님의 손’의 의미 / 146
66. ‘은사배치원리’의 적용 / 148
67. 하나님의 아들들의 의미 / 150
68. 천상회의에 참석한 사탄 / 152
69. 욥과 친구의 대화구조 / 154
70. 욥기의 라합과 여호수아서의 라합 / 156
71. 회복된 욥의 아내는 후처인가? / 158
72. ‘묵상하다’의 언어적 의미 / 160
73.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인간 / 162
74. 멜기세덱의 반차 / 164
75. 믿음으로 구원? 행위로 구원? / 166
76. 성소에서 깨달은 것 / 168
77. 인간의 악행을 허용하시는 하나님 / 170
78. 새 노래란? / 172
79. 손을 들고 기도나 찬양하는 행위는 정당한가? / 174
80.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 / 176
81. 뇌물예찬? / 178
82.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180
83. 아가서의 주인공은 세 명? / 182
84. 멍에가 부러질 때 기름은 성령? / 184
85. 이사야가 예언한 처녀와 아이 / 186
86. 루시퍼는 사탄인가? / 188
87. 여호와의 책에 있는 짝 / 190
88. 히스기야가 문병받은 때 / 192
89. 예레미야의 회개와 회복 / 194
90. 에스겔은 정치적 이스라엘 회복을 예언했나? / 196
91. 의인 다니엘과 선지자 다니엘 / 198
92. 우바르신과 베레스 / 200
93. 메대 사람 다리오 / 202
94. 일흔 이레 / 204
95. 침상에서 슬피 울고 곡식과 새 포도주로 모임 / 206
96. 여호와의 날과 다윗의 악기제조 / 208
97. 요나의 비관과 박넝쿨 교훈 / 210
98. 하박국의 대내외의 정치적 상황 / 212
99. ‘수년 내’ 그리고 ‘부흥’의 의미 / 214
100. 스가랴 환상 속의 두 감람나무 / 216
101. 치료하는 광선은 레이저? / 218
주제 색인 / 220
성경 색인 / 225
성경에서 보도하는 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에덴동산의 위치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의 근원이 되는 장소일 것입니다(창 2:8-14). 현재 지형으로 보면 이 강의 근원이 있는 곳은 흑해와 반 호수 사이의 아르메니아 산맥 일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보도를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고 지도에 표기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고대 사람의 우주관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Walton). 그래서 에덴동산이 지리적으로 분명히 존재한 것이지만 본문의 강조점은 에덴동산의 역할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지리적인 관심보다는 우주적인 기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신학적 설명이기도 합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서 거기서 나오는 물이 온 세상에 생명을 공급한다는 의미가 더 큰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그 동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하겠습니다 – p.20 -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긴 발람’이란 말이 본문에 대한 바른 해석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앞에서 주석을 참고하신대로 발람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점쟁이 혹은 주술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수 13:22). 물론 주석가들 가운데는 발람이 밧단아람에서 가까운 브돌에서 왔기 때문에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습니다(Gispen). 그러나 족장 시대에서 적어도 사백오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곳
에 여호와에 대한 신앙이 남아있었다고 보기를 어려울 것입니다. 그가 이방인 주술사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언급하고 그에 대한 순종을 보여주는 것은 독자에게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민 22:8). 중요한 것은 발람이 여호와를 만나기 전에 이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 p.86 -
사사기는 처음부터 각 지파가 배정받은 땅에서 가나안 주민을 몰아내고 그 지역의 영유권을 행사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그 일을 잘하지 못하고 안주한 여러 가지 경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닌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사사 시대가 도래한 이유도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언약에 대한 불순종(삿 2:2), 자녀교육 실패(삿 2:10), 종교적 타락(삿 17-18장), 도덕적 타락(삿 19-21장). 이런 상황에서 야베스는 자신의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베스의 기도는 우리가 ‘나라가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듯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이상적인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43 -
율법에 의해서 하나님의 공의만을 주장하며 자신의 주관에 사로잡혀 자신의 뜻을 그르치는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말과 실물로써 훈계하셨습니다.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욘 4:4, 9). 박넝쿨의 실물교훈은 분명히 요나가 하찮은 미물을 아낀다면 하나님이 니느웨를 아끼시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줄 알았지만 열국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과 모든 만물의 창조주로서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그때는 잘 적용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요나가 박넝쿨을 소중히 여기는 이상으로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을 아끼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책망하신 것입니다(욘 4:10-11). 사실 니느웨의 구원도 이스라엘을 위한 것입니다. - p.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