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안에서도 보수진영의 신학을 알고 싶다면, 빠져나갈 수 없는 분이 바로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과 그의 학문적인 계승자, 존 프레임(John Frame)이다. 존 프레임의 방대한 저서들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책이 바로 이 주권신학 시리즈이다. 신지식론, 신론, 기독교 윤리학, 성경론으로 나뉘는 주권신학 시리즈는 그의 신학이 가진 특징인 관점주의를 잘 드러낸다.
성경론은 다스리는 능력, 의미 있는 권위, 인격적 임재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오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 성경론은 본문과 부록으로 나누어지는데, 본문에서는 성경론과 관련된 모든 측면을 통찰력 있게 분석한다. 그리고 부록에서는 여러 현대 신학자들의 논증에 담긴 성경론을 날카롭게 비평한다. 이 책을 통해 개혁주의가 가진 성경론의 진가가 드러날 것이며, 독자들은 하나님과 인격적 소통으로서 성경이 갖는 진정한 권위를 깨달을 것이다.
추천사 1 (이승구 박사 외 4명) 5
추천사 2 (D. A. 카슨 박사 외 13명 ) 11
에드먼드 클라우니 박사를 기념하며 18
머 리 말 21
서 문 24
역자서문 29
약 어 표 52
제1부 들어가기
제1장 인격적 말씀 모델 57
제2장 주권과 말씀 65
제2부 현대신학에서의 하나님의 말씀
제3장 계시에 관한 현대의 견해 73
제4장 계시와 이성 81
제5장 계시와 역사 89
제6장 계시와 인간의 주관성 99
제7장 계시와 하나님 자신 107
제3부 하나님 말씀의 본질
제8장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인가? 115
제9장 다스리는 능력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 119
제10장 의미 있는 권위로서의 하나님의 말씀 125
제11장 인격적 임재로서의 하나님의 말씀 137
제4부 말씀이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가?
제12장 하나님 말씀의 매체 147
제13장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 153
제14장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음성 163
제15장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 선지자와 사도 169
제16장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성 187
제17장 구약성경에 있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191
제18장 구약성경에 있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 201
제19장 구약성경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 209
제20장 구약성경에 대한 사도들의 견해 213
제21장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신약성경 223
제22장 성경의 정경 229
제23장 성경의 영감 239
제24장 성경의 내용 245
제25장 성경의 권위, 내용, 목적 269
제26장 성경의 무오성 275
제27장 성경의 현상 287
제28장 성경의 문제들 295
제29장 성경의 명료성 319
제30장 성경의 필요성 331
제31장 성경의 포괄성 339
제32장 성경의 충족성 343
제33장 성경의 전달 367
제34장 성경의 번역과 편집 385
제35장 가르침과 설교 391
제36장 성례 399
제37장 신학 411
제38장 고백, 신조, 전통 421
제39장 인간의 성경 수용 431
제40장 성경의 해석 435
제41장 확신 441
제42장 사람을 통한 계시: 신적 증거 449
제43장 계시로서 인간 465
제44장 마음에 쓰기 471
제45장 요약 및 구조적 성찰 481
제46장 맺음말 487
부록
부록 A 대립과 성경론 493
부록 B 합리성과 성경 509
부록 C 리차드 멀러(Richard Muller)의 『신학 연구』(The Study of Theology) 비평 539
부록 D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와 하나님의 말씀 565
부록 E 하나님과 성경 언어: 초월과 내재 605
부록 F 성경이 성경을 변호한다 629
부록 G 존 웬함(John Wenham)의 『그리스도와 성경』(Christ and the Bible) 비평 659
부록 H 데이비드 켈세이(David H. Kelsey)의 『최근 신학에서의 성경의 사용』(The Uses of Scripture in Recent Theology) 비평 663
부록 I 성경 권위의 본질과 범위: 북미개혁장로교단C(RC), 보고서 44 비평 693
부록 J 피터 엔즈(Peter Enns)의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Inspiration and Incarnation) 비평 705
부록 K 톰 라이트(N. T. Wright)의 『마지막 말씀』(The Last Word) 비평 729
부록 L 앤드류 맥고완(Andrew McGowan)의 『성경의 신적 호흡』(The Divine Spiration of Scripture) 비평 739
부록 M 노만 가이슬러(Norman Geisler)의 『성경 오류성』(Biblical Errancy) 비평 777
부록 N 성경의 권위 없이 그리스도도 없다 789
부록 O 성경주의(Biblicism)에 가까운 원리 변호: 신학적 방법에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역사에 관한 숙고 795
부록 P 전통주의 839
부록 Q 성령과 성경 857
참고문헌 889
주제색인 902
이승구 박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김진운 형제가 번역한 존 프레임의 책에 추천 서문을 쓰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20세기의 개혁신학자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가 서문을 썼고, 에드먼드 클라우니(Edmund P. Clowney)를 기념하며 그에게 헌정된 이 귀한 책에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과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프레임이 항상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의 수제자요, 후계자로 생각된다는 점과 또한 전자오르간을 치면서 예배에 참여하기를 바라던 그의 마음을 고려해 볼 때 꽤 젊은 분이라고 여겨졌던 그가 벌써 노인이 되었다고는 생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서문에서 프레임이 2009년 4월에 자신이 70세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제 벌써 그는 75세를 바라보고 있는 노학자이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그와 함께 공부했던(1961-1964) 우리 선생님들께서 그와 비슷한 나이시고, 다들 은퇴하셨다는 것을 떠올려 볼 때, 프레임이 한층 더 대단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가 1939년생이니 정말 그렇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책을 써내는 프레임은 아직도 참으로 젊은 사람(靑年)이다. “주권신학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이 『성경론』은 결코 만만치 않은 책이다.
프레임은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서 학부(A.B.)를 마친 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사(B.D.)를 졸업했다. 또한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신학부에서 석사(A.M.)와 그 상위 과정(M.Phil)을 마쳤다. 이후 존 머레이(John Murray)의 후임자였던 노만 쉐퍼드(Norman Shepherd)가 1967년 예일대학교의 박사 과정 중에 있던 프레임에게 필라델피아 소재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도록 초빙하였다.3 프레임은 오랫동안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조직신학과 변증학을 가르쳤고(1968-1980), 캘리포니아 소재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창설하는 교수단으로 활동하였다(1980-2000). 2007년에 리폼드 신학교(Reformed Theological Seminary)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계속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프레임은 철학을 배경으로 하여 조직신학을 하는 사람답게 상당히 꼼꼼히 생각하고 글을 써나간다. 철저하기로 소문난 그의 면모를 이 “주권신학 시리즈”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 프레임은 성경에 대한 모든 문제들을 꼼꼼하게 언급하면서, 결국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 그의 태도와 입장은 이 책의 본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주권신학 시리즈”의 다른 책들에서와 같이 상당한 분량의 부록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이 책 또한 프레임의 다른 모든 책들처럼 코넬리우스 반틸의 큰 영향 가운데 있다는 것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2장에서 프레임은 반틸이 수업 시간에 늘 그리던 그림을 그려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차이를 분명히 밝히며 논의를 시작한다.
『성경론』에는 프레임의 고유한 주장인 하나님(God’s Truth), 우리의 인격(person), 상황(situation)이라는 삼중요소를 강조하는 관점주의(perspectivalism)가 드러나 있으며, 이를 통한 성경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 있다. 프레임의 강의와 다른 책에서도 이것이 잘 나타나거니와4 프레임 자신이 자신의 책 가운데서 최고의 책으로 말하고 있는 이 책에도 역시 프레임의 관점주의가 잘 나타난다. 한편으로 코넬리우스 반틸에게서 배운 것을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이 관점주의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것이 프레임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이는 이 책의 1장에서부터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프레임 자신이 클라우니와 견해를 달리하는 예배의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현대 음악의 적절성과 예배에서의 기기 장치 사용의 가능성 문제, 그리스도와 문화에 대한 ‘두 왕국’ 견해 그리고 노만 쉐퍼 신학의 가치 등에 있어서 우리들은 프레임이 조금 더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현재 개혁신학 내에서 우리가 깊이 있게 논의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반틸에 관한 책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프레임은 반틸의 수제자요, 그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 그는 반틸과는 의견을 달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 안에 있고, 개혁주의 진영 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최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일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프레임의 책과 한국 독자가 대화할 수 있도록 애쓴 김진운 형제에게 우리 모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김진운 형제가 얼마나 열심히 이 작업을 했는지는 각
주를 달아 가며 쓴 역자 서문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반틸을 깊이 이해하고, 반틸과 프레임을 유기적으로 이해하면서 쓴 역자 서문은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을 잘 안내하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이를 보면서 오래전 내가 학생일 때 각주를 달아 가면서 역자 후기를 쓰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했던 일을 동일하게 하며 애쓴 김진운 형제에게 감사를 하게 되었다. 보스(Geerhardus Vos)의 책과 반틸의 책에 대한 나의 부족한 번역서에 굉장한 추천의 글을 써 주시던 박윤선 목사님에게 다시금 감사드리면서, 이제 다음 세대의 조직신학 연구를 위해 애쓰며, 이 번역을 위해 힘쓴 김진운 형제의 노고를 높이 치하하고 싶다. 김진운 형제에게 감사하는 길, 더 나아가 이 세대에도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신학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렇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 준 존 프레임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는 길은 이책을 찬찬히 음미하며 읽어 내려가는 일일 것이다.
이상웅 박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코넬리우스 반틸의 제자이면서도 비평적으로 그 전통을 계승해온 존 프레임이 쓴 “주권신학 시리즈” 네 번째 책인 『성경론』의 출간을 개혁주의 진영에 속한 독자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올리버 버스웰, 마이클 호튼, 로버트 레이몬드 등의 저술들과 더불어서 프레임의 저서들을
읽게 되면, 역사적 개혁주의 전통의 풍성함의 또 다른 면모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신학적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공급받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프레임은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에 대해서 어느 저자들보다 더 심오하고도 박식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 성경관, 성경의 특징 그리고 인간 편의 수용 문제 등에 대해서 다룬 걸작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책의 1/3에 가까운 부록들은 『성경론』의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서평들과 글들을 수록하고 있어서 심화학습에 유익을 준다고 판단된다. 국내에는 이전에 프레임의 책 몇 권이 소개된 적이 있지만 그렇게 호응을 얻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프레임이 평생에 걸쳐서 연구한 말씀의 신학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주권신학 시리즈”, 최신간 『조직신학서론』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Christian Belief )을 통해서 한국의 역사적 개혁주의 진영이 풍성한 유익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김진성 박사
진리와 제자교회 담임목사
『성경론』에서 존 프레임은 일반적으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당연한 진리와 신학적 명제를 특유의 명쾌함으로 쉽고 설득력 있게 풀어간다. 프레임은 개혁주의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하면서도, 균형 있는 신학 정립을 위하여 그 정당성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특히 성경을 읽는 인간 편에서 인식하고 인정할 때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자유주의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분명히 지적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이기에 읽는 자에게 역동적으로 역사하는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임을 명확히 밝힌다. 이 책은 어려운 신학 주제를 간결하고 쉽게 풀어준 책으로서 일반 신자들도 읽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김진한 목사
의왕새찬교회 담임목사
목회의 일선에서 “이 세상과 문화 속에서 씨름하는 우리의 신실한 신자들에게 가장 큰 위로와 확신과 힘이 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주님의 양무리를 신실하게 돌보려는 목회자들에게 있어 크나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숙제를 풀어 가는 것이 또한 오늘의 목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성경론』은 우리에게 그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라는 열쇠이다. 이는 초월자이시며 전능자이신 그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그분의 백성과 소통하시고, 교제하시며, 동행하신다는 확신과 믿음이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 66권이 우리 손에 들려 있고,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한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져온 그 순수한 신앙의 전통은 절대로 변색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오늘의 신학에서 우리에게 찾아온 가장 큰 도전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호하게 만드는 여타의 신학들이다. 오늘의 교회는 이와 같은 도전에 너무도 많이 굴복당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가 종교다원주의라고 하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원흉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초점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 무엇이 과연 우리의 순전한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길인지, 타락한 이 세상과 문화에 타협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 있는 대답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이 책이 오늘의 교회와 신자들 그리고 목회자들에게 크나큰 유익이 있음을 확신한다.
석철효 박사
수지 할렐루야교회 담임목사
인간의 합리적 판단과 이성 그리고 과학적 검증이 진리와 비진리를 나누는 절대 권위를 갖고 있는 시대에 성경을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가르치는 사역에 많은 도전이 있다. 감사하게도 존 프레임의 『성경론』은 역사적 개혁주의 관점에서 성경의 신적 권위에 도전하는 자유주의적 공격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반론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 이 시대의 모든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경 권위에 의심을 품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명쾌한 해답서가 될 줄로 믿는다.
말씀이 글로 기록된다면 인격성이 덜한 말씀이 되지 않는가? 브루너(Emil Brunner)와 다른 신학자들은 이같은 취지로 자신의 논증을 주장했다. 이 견해에는 일말의 진실이 존재한다. 가령 사도 요한은 그의 “택하심을 받은 부녀”(요이 1:2)에게 무언가을 전하기 위해 종이와 먹을 사용하는 대신에 오히려 “기쁨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 대면하여 말하기를” 희망하고 있다(요이 1:12). 우리가 나중에 사람-매체(person-media)1에 대한 논의에서 살펴보겠지만, 어떤 방식에서는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 기록된 말씀의 능력을 초월하여 소통하게 한다. 그러나 또한 어떤 방식에서는 기록된 말씀이 인격적 만남보다 더 유용하다. 기록된 말씀은 더 영구적이다. 따라서 공식적이고 공적 기능에 더 적합하다. -187p-
성경론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쟁하는 주제 중 하나는 성경의 무오성 논쟁이다. 이제 우리는 이 논쟁에 들어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이들이 영어성경에 없는 무오성이라는 용어에 대해 다양한 정의를 내려왔다. 제임스 오르(James Orr)는 이 용어가‘ 역사적, 지정학적, 과학적 세부사항의 문제에서 엄밀한 문자성’을 가리킨다고 언급한다.1 제한적 무오성이라 부르는 입장도 있다. 제한적 무오성은 성경이 단지 구원의 문제에서만 무오하다고 주장한다.3 제임스 오르가 내린 정의에 의하면 제한적 무오성의 입장은 전혀 무오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오성이라는 용어가 가진 유일한 목적은 구원의 문제와 관계없는 문제에서 성경이 가진 정확성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오성이라는 용어를 정의하는 또 다른 방법은 사전을 살펴보는 것일 수 있다. 신학자들이 사전상의 정의에 의지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학 용어들은 종종 일반 사전들이 무시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또한 신학자들이 기존 용어에 대하여 자신들만의 정의를 만들 수 있다는 자유를 가정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전들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정의가 암시하는 것보다 무오성이라는 용어에 대해 훨씬 더 직관적이고 논리적인 이해를 하고 있다. 『미국 헤리티지대학 사전』(American Heritage College Dictionary)은 무오성을 단순히 ‘오류 혹은 허위로부터의 자유’라고 정의한다. 무오성은 다음의 내용을 의미한다. -275p-
나는 앞장에서 개혁주의 전통은 때로 설교를 성례보다 더 우위에 두는 경향으로 실수를 범해왔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나는 이 장에서 하나님 말씀의 전달로서의 성례에 관한 아주 간략한 것들을 언급하고 싶다. 12장에서 나는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시는 세 종류의 매체(media), 즉 사건, 말씀, 사람을 구별했다. 13장은 사건을 다루었다. 14장에서 36장까지는 말씀 안에 있는 계시를 다루어 왔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대부분의 논란은 언어적 매체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나는 성경의 언어적 매체를 강조하고, 보다 광범위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이 책 후반부에서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말할 것이다. 성례는 다소 이 계획 안에 포함되기 어렵다. 문자적으로 성례는 사건이지 말씀이 아니다. 그러나 성례에 대한 신학적 고찰의 초점은 의미의 담지자(bearer)로서 성례에 맞추어진다. 종교개혁 시기에 성례는 때로‘ 가시적 말씀’(visible words)으로 불렸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성례는 또한 사람을 통한 계시이다. 성례에 관한 많은 논의의 초점이 성례시‘ 그리스도의 임재’의 본질에 관해 맞추어져 왔다. 나는 이 장에서 공공 예배의 한 부분으로 성례를 설교 그리고 가르침과 관련시킬 목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399p-